‘애니콜 화형’ 수준 넘어야 새 기회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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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노트 7 이후’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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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김봉영 삼성물산리조트 사장(왼쪽 둘째), 김영기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왼쪽 넷째),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맨앞) 등이 수요 회의를 마친 뒤 사옥을 나서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애니콜 화형식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각오를 다져야 한다.”

문제 덮고 새 모델 출시 안돼
발화 원인 명확하게 밝히고
고객 충성도 높일 방안 강구
속도 제일주의 손질 불가피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맞은 삼성전자에 대해 위기관리 전문가인 송동현 밍글스푼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삼성전자는 1995년 3월 경북 구미의 공장에서 15만 대의 불량 전화기를 쌓아놓고 불태웠다. 94년 무리하게 제품 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11%대로 치솟았던 애니콜은 화형식 이후 국내 1위 매출을 기록한다. 국내 경영·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외신 은 “단종 사태가 삼성전자에 품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번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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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7 단종으로 문제를 덮고 다음 모델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배터리 발화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한 뒤 재발 방지책을 세우고 이를 알리란 얘기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노트7 배터리 백서’ 출간을 제안했다. 그는 “더 이상 노트7을 판매하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에게 피해와 불안을 일으킨 사태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백서를 출간하고 강화된 안전 기준을 업계와 공유해 모범을 보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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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충격을 감안하면 단순한 일대일 교환이나 환불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용민 대표는 “여기저기 발화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마음 고생을 적잖이 한 고객들에게 ‘같은 가격의 제품으로 바꾸거나 환불을 해 주겠다’는 것은 충분한 보상이 아니다”며 “이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보상 프로그램으로 고객 충성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참에 개발 과정과 조직 문화를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의 제작 과정이 ‘협력사 비밀보장’과 ‘빠른 출시’에 초점이 맞춰진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많은 부품이 제각각 안전테스트와 인증을 거치는 바람에 통합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어느 단계의 어느 회사 부품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신속한 원인 규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매·마케팅 부서가 개발 부서를 주도하는 식의 조직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출시 일정을 잡아놓고 개발팀에 이를 맞추길 요구하는 게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라며 “개발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 개발 일정이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속도 제일주의도 일정 부분 손질이 불가피하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속도전은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에 완전히 버리라고 주문해선 안 된다”며 “다만 제품 복잡성이 높아진 만큼 품질 관리 과정에 갈수록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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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7 사태의 타격을 줄이려면 장기적으로 브랜드 전략을 새로 세우라는 주문도 나왔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프리미엄 모델부터 초저가 모델까지 모두 갤럭시 브랜드를 쓰다 보니 한 제품에서 문제가 터져도 전체 스마트폰 사업이 휘청인다”며 “소비자군별로 각기 다른 브랜드로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노트7 교환·환불 시작=이동통신 3사는 13일부터 노트7 교환·환불 서비스를 시작한다. 소비자는 통신사 대리점이나 오픈마켓 등 노트7을 처음 샀던 곳에서 연말까지 교환(타사 기종 포함)·환불을 받을 수 있다. 노트7을 바꾸지 않고 계속 쓰겠다고 하는 소비자들은 사후 서비스(AS)에서 불편을 겪게 될 수 있다. 단종으로 부품이 더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임미진·박수련·이소아 기자 miji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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