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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는 동네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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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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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경제부장

법인(法人)의 정체는 묘하다. 자연인, 곧 사람이 아니다. 백과사전이나 법전을 뒤지면 이렇게 정의한다. ‘법률에 의하여 권리 능력이 인정된 단체 또는 재산.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런 법인의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 법인세다.

법인세 인상론, 유권자 환심 사려는 카드로 쓰여선 안 돼
규제완화·구조조정으로 기업 투자 유도하는 게 근본 해법

어째 이상하다. 단체 또는 재산이 세금을 낸다. 세금을 내는 주체는 누구인가. 결국 사람이다. 법인세를 내면 종업원의 임금이나 주주에게 가는 배당이 줄 수 있다.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도 있다. 법인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올릴 수 있어서다. 금고가 휑해졌으니 투자는 줄어든다. 일자리가 늘어날 수 없다. 법인세는 사실상 주주·종업원, 그리고 소비자 모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세금이다. 법인세 논란이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대 국회 첫해인 올해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법인세 인상’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한목소리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더민주가 발의한 법인세 인상안은 과세표준(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500억원 초과 기업에 25%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내용이다. 더민주는 이명박 정부 때 내린 법인세(최고 세율 25%→22%)를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당은 현행 과표 200억원 초과 기업에 적용되는 최고세율(22%)을 24%로 인상하자고 한다.

왜 법인세를 올리자고 하나. 논리는 분명하다.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다. 법인세를 야당안대로 올리면 연간 2조5000억~4조1000억원의 세금이 더 들어온다.

왜 곳간이 중요하나. 앞으로 나랏돈이 들어갈 곳이 많아서다. 특히 필요한 게 복지 재원이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현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앞으로 복지비 지출은 폭발적으로 늘게 돼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검은 구름이 우리 앞에 대기하고 있어서다. 사회보장위원회 추산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은 2020년 12.9%를 거쳐 2040년 22.6%에 이를 전망이다. 이때쯤이면 복지비 지출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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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왜 복지를 강화하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양극화는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부의 배분을 통해 빈곤층과 약자도 행복·건강 등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의 건전성을 확보하자는 의미다.

취지는 이해된다. 그런데 왜 법인세냐는 문제는 남는다. 세금의 종류는 많다. 개인의 소득에 매겨지는 직접세인 소득세나 물건을 살 때 내는 간접세인 부가가치세 등 다양하다. 법인세는 이들 세금과 다른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돈 많은 재벌이 내는 세금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는 “재벌에게서 세금 더 걷는다는데 문제 되느냐”는 국민정서법의 원형이다. 게다가 법인세는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이 아니다. 정치인이 표 걱정할 필요 없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감세론이 국정 철학이었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기대해서다. 기업이나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면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잔을 쌓아 놓고 물을 채우면 위 잔에서 넘친 물이 아래 잔으로 흘러내리는 장면을 그려보면 된다.

현실은 거꾸로 갔다. 대기업의 이익은 늘었지만 국내 투자는 별반 늘지 않았다. 투자가 움츠러드니 고용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산층·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할 리 없었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10∼2014년 소득 증가율은 법인(14.6%)이 개인(4.9%)을 크게 앞섰다. 감세 혜택이 밖으로 샌 꼴이 됐다(trickle out).

그렇더라도 감세의 선순환이 사라진 게 증세를 도입할 근거가 되는 건 아니다. 법인세율이 높아지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이론을 굳이 들먹일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외국 기업 유치는커녕 국내에 들어와 있는 기업도 빠져나간다는 주장을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다만 분명하게 따져 볼 건 과연 기업이 단물만 빨아먹고 투자를 회피했느냐는 점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좇는 존재다. 돈이 된다면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규제다. 각종 규제에 발 묶인 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이런 기업이 외국으로 자꾸 나가는 걸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법인세를 올리는 건 단추를 잘못 꿰는 것과 같은 꼴이다. 순서가 잘못돼서다. 규제완화나 구조개혁 같은 본질 처방이 먼저 나와야 한다. 경기는 바닥을 기어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는 마당이다. 그런데 올 들어 8월까지 법인세는 전년보다 7조1000억원이나 더 걷혔다. 한쪽에선 추가로 예산을 편성해 나랏돈을 푸는데, 다른 쪽에서는 기업 세금을 더 걷었다. 이런 엇박자가 어디 있나. 근본 해법은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길뿐이다. 법인세 인상은 마지막에 써야 하는 카드다. 이를 외면한 채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건 유권자 환심 사려고 채찍 휘두르는 꼴이다. 그 채찍질에 투자는 더 움츠러들고, 일자리는 날아갈 수 있다. 법인세는 동네북이 아니다.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