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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정부 운명에 중대고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 동안 잠잠하던 필리핀민주정국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필리핀 민주화 작업의 핵심인 신 헌법제정을 맡고 있는 헌법위원회가 7일「코라손·아키노」대통령(53)의 임기를 92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신 헌법에 넣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아키노」대통령의 임기문제는 그 동안 논쟁이 유보되었던「아키노」대통령정부의「합법성」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아키노」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에 중대한 고비가 될 듯하다.
「아키노」대통령의 임기를 내년 초 신 헌법이 확정될 때까지만 인정하고 그후에 대통령선거를 다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현「아키노」 정부가 혁명정부로서 임시 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는 원칙론을 펴고 있다.
이 주장에는「브라스·오플레」전 노동장관을 리더로 하는 필리핀국민당(PNP)등 야당그룹과「살바도르·라우렐」현 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12개 군소 정당의 연합체인 민주세력연합(UNIDO), 그리고「환·포괴·엔릴레」국방장관의 군부세력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엔릴레」국방장관은「아키노」대통령이 시민혁명에 의해 집권을 했지만 그후에 73년 헌법을 폐기하고 혁명적인「자유헌법」에 의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국민투표로 신 헌법이 확정되면 당연히 신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다시 실시, 합법성을 취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아키노」 대통령이 축출된「마르코스」가 73년 헌법의 경과조항을 이용해 집권연장을 했던「전철」을 밟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아키노」대통령측근들은 신 헌법이 확정된 후 대통령선거를 다시 실시하면 이제 겨우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필리핀 정국을 다시 혼란 속에 몰아넣을 우려가 있고 국력낭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아키노」현대통령의 6년 임기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 론을 펴고 있다.
이 같은 원칙론과 현실논의 논쟁은 자칫하면 헌법위원회가 작업하고 있는 신 헌법의 정당성자체에 큰 타격을 줄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대통령선거 재 실시를 주장하는 측이 헌법위원회 구성자체의 합법성을 문제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48명으로 구성된 헌법위원회는 지난5월「자유헌법」의 혁명권력에 기초해「아키노」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임명했었다.
마닐라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이 문제를 두고 신 헌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이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야당세력의 위협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아키노」대통령과 함께「마르코스」축출에 앞장섰던「라우렐」부통령의 UNIDO세력과「엔릴레」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손을 잡아「아키노」대통령을 축출시킬 것이라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또「아키노」대통령임기의 합법성문제가 대두되어 필리핀정치가 혼란에 빠지면 하와이로 망명간「마르코스」전 대통령도 지난 2월7일의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이 진정한 승리자였다고 주장, 필리핀 정계복귀를 노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하간 「아키노」대통령임기를 둘러싼 논쟁이 필리핀정국을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면 어렵게 쟁취한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적지 않은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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