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닥인데, 정부·한은 핑퐁게임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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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환담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7일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선 “구조개혁으로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 기획재정부]

“건설 투자를 중심으로 내수는 완만한 증가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수출·제조업의 부진으로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미약하다.”

내수 살리기 부양책 서로 떠넘기기
유일호 “기준금리 아직 여력 있다”
이주열 “한국 재정은 세계 톱클래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9일 내놓은 ‘10월 경제동향’의 결론이다. 부동산 시장은 뜨겁지만 그 온기가 경기 전반으로 퍼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의 진단은 연초 이후 한결같다. 한마디로 ‘수출·제조업은 부진, 내수·서비스는 불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정부는 나랏돈을 풀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를 떠받쳐 왔다. 충격을 흡수하면서 세계 경제가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경기는 좀처럼 회복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다. 수출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다 올 8월 플러스(2.6%)로 전환했지만 9월엔 다시 -5.9%로 고꾸라졌다.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을 향했다. 부동산 주도의 ‘외끌이 경기’는 정책의 산물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해서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의존형 성장은 상당 부분이 가계부채로 뒷받침된다는 면에서 위험한 데다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로 지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내수가 성장을 주도하려면 건설 외에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야 한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까지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하고, 최근에는 할인행사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주도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소비는 정책이 나올 때만 반짝 오를 뿐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고꾸라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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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붓는 ‘마중물’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기의 재정 의존도 역시 심화하고 있다. KDI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 2.6% 중 재정의 기여도는 3분의 1가량인 0.8%포인트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성장률 0.5%에선 정부 부문의 기여도가 0.5%포인트였다. 민간 부문 기여도가 ‘제로’(0)였다는 얘기다.

이 결과 경기가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모두 정부만 쳐다본다. 추가경정예산 집행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인 6일 정부가 다시 ‘미니 부양책’을 내놓은 것도 그런 영향이다.

문제는 재정·통화 정책의 여력 역시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은 내년에 40% 선을 넘어갈 예정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내리기는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한데 재정·통화당국 간 불협화음만 들려온다. 서로 경기부양을 책임지라는 ‘핑퐁게임’이 벌어질 조짐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기준금리는) 아직 ‘룸’(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서다.

반면 같은 행사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 안정 리스크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재정건전성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라고 덧붙였다. 재정정책을 쓸 여력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매달려선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두 경제 수장이 공을 떠넘기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당분간은 완화적 재정·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구조개혁을 지속해 나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조민근·조현숙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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