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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SUNDAY 500호 기획

농업 선진국 되려면 쌀 문제 뛰어넘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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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쌀 보호정책은 깨진 독에 물 붓기가 된 지 오래다. 정부는 올해도 ‘쌀 수급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내리 4년 대풍년이 들어 초과 생산된 쌀을 전량 사들인다는 내용이다. 올해 생산되는 쌀 420만t의 시장 가치는 7조1116억원으로 쌀값 안정을 위해 투입되는 재정은 3조2500억원에 달한다. 그 이유는 쌀값이 올해 목표 가격의 한참 아래로 폭락하면서 시가와의 차액 거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보전해 주고 있어서다. 직불금이 1조8000억원에 달하고, 과다 생산된 35만t 추가 수매에 6000억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공공비축미 39만t을 매수하는 데 6607억원, 이렇게 쌓아 둔 쌀을 관리하는 데 2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쏟아붓는다. 7조원어치 쌀을 생산해 놓고 3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쌀값을 떠받치기 위한 비용으로 쏟아붓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농업의 기계화와 영농기술의 발전으로 쌀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연말 비축량 200만t은 식량농업기구(FAO) 권장량의 세 배에 달한다. 식생활의 변화로 소비량은 수직 하락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도 국민 세금을 동원해 쌀값 떠받치기에 나섰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쌀에 대한 주권 보호라는 비현실적인 논리에 갇혀 유지되고 있는 비합리적인 직불금제도 때문이다. 이는 쌀값을 시장가격과 관계없이 억지로 떠받쳐주는 제도로 이웃 일본은 시대착오적이란 판단에 따라 재작년에 변동직불제를 폐지했다. 대신 논에 밭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바꿨다.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쌀에 대한 과장된 식량 안보론은 국내 농업을 오히려 황폐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체 곡물의 자급률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국내 식량 자급률은 밀 1.2%, 옥수수 4.1%, 콩 32.1% 등으로 식량 안보를 걱정할 만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곡물의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10년여 전부터 밀·콩 등 다른 작물에도 변동직불금을 주는 ‘생산조정제’를 추진해왔지만 쌀 직불금에 돈을 쏟아붓느라 무용지물이 됐다.

문제는 쌀의 수요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구 부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85년 128.1㎏에서 지난해 62.9㎏으로 줄어들었다. 쌀 대신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식품을 즐기는 소비자의 새로운 식습관이 만들어낸 결과다. 쌀 수요 감소는 농업 인구의 현저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무역 규모 7위에 달하는 제조업 강국으로 급변한 반면 농업은 한계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정책과 제도의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 그런지는 선진국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이탈리아·프랑스·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은 하나같이 농업대국이 됐다. 이들 국가가 식량 안보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국가로 가면서도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운 전략적 정책과 제도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

우리도 농업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세계 식품 시장(5조3000억 달러)은 자동차(1조7000억 달러)의 세 배가 넘는다. 일자리도 많이 창출하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다양한 곡물을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식품만 잘 개발해도 나라가 먹고살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대체 작물로의 유도를 강화하고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해제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농업에 참여하려다 농민 반대로 뜻을 접은 LG CNS와 동부한농팜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직불금이란 달콤한 카드로 표밭을 관리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대안 모색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농민도 농촌도 모두 잘사는 농업 선진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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