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생부 조작 방치하면 대입 공정성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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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교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는 학생 개개인의 얼굴이다. 3년간의 내신과 출결석, 특기 사항, 체험·봉사활동, 수상 실적 등이 모두 기록된다. 그런 학생부가 대학 수시 입시의 핵심 자료로 활용되면서 신뢰도는 더 중요해졌다. 올해 4년제 대학의 수시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70%를 넘어섰다. 특히 수능 성적과 상관없이 학생부를 토대로 뽑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새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올해는 7만2101명(20.3%)을, 내년에는 8만3231명(23.6%)을 학종으로 뽑는다. 서울 16개 대학의 비중은 42.6%인데 서울대는 78%나 된다.

대입 전형이 학생부 중심으로 바뀌자
진학 실적 높이려는 학교의 조작 성행
시스템 보완하고 일벌백계 교단 추방을

 대학들이 단순 점수에 집착하지 않고 학생들의 활동 내역과 창의성·잠재력을 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앞서가려는 세계 대학들의 입시 흐름이기도 하다. 그런 변화를 안착시키려면 학생부의 공정성·객관성·투명성 확보가 필수다.

 그런데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엊그제 내놓은 국감 자료는 충격적이다. 최근 4년간 전국 371개 고교에서 419건의 학생부 조작이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광주광역시의 사립여고에서 벌어졌던 조작 사건이 특정 학교만의 일탈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의 고교들은 진학 실적을 높이려 학생부를 기록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을 마구 성형했다. 대구의 한 고교는 학생 30명의 동아리 활동을 짜깁기했고, 울산의 고교는 ‘품행 불량’ 징계 학생을 ‘자기주도학습 모범생’으로 둔갑시켰다. 이 정도라면 조작 수준을 넘어선 중대 범죄 아닌가.

 이번 실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자칫 학생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무엇보다 교육 당국의 책임이 크다. 교육부는 지난 2011년 서울의 한 고교에서 조작 사건이 발생하자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나아진 게 없다. 여중생 성폭행 가담자가 봉사왕으로 둔갑해 유명 사립대에 합격하고, 20일 결석자가 3년 개근상을 탔다가 덜미를 잡힌 사례만 봐도 그렇다. 학부모와의 ‘은밀한 거래’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입 근간을 뒤흔드는 학생부 조작을 없애려면 ‘나이스’ 체계부터 전면 손질해야 한다. 교육부는 다음달까지 전국 2300개 고교를 전수조사해 부당 사례를 찾아내겠다고 했지만 알맹이가 빠졌다. 접속 권한을 부여하는 교장과 자료 입력·수정을 맡은 담임·과목 교사 의 짬짜미 대책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가 제출한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회의 기록만 보고 시비를 가려야 돼 형식적인 점검에 그칠 우려도 있다.

 따라서 나이스 접속·입력·수정 내역 보관을 일정 기간 의무화하고, 이중·삼중의 보안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학생부 조작을 중대 범죄로 일벌백계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 번만 적발돼도 교단에서 영구 추방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조작이 드러나면 합격을 취소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입 공정성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