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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이 악재 통보받기 13분 전, 카톡에 정보 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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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 국정감사에 나와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임 위원장은 “한미약품의 공매도와 공시 관련 문제를 전반적으로 분석해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 계약 해지를 정식 통보받기 전에 관련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해 금융 당국이 조사 중이다. 한미약품이 계약 파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악재성 공시를 지연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금융 당국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한미측 “오후 7시6분 계약해지 알아”
제보자 “오후 6시53분 카톡 메시지”
호재성 공시도 사전 유출 가능성
여야, 정무위 국감서 엄중 처벌 요구
김영주 “부당이득 땐 전액 환수를”
임종룡 “공시·공매도 개선하겠다”

6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자조단)에 따르면 제보된 한미약품의 계약 해지 관련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처음 오간 시점은 지난달 29일 오후 6시53분이다. ‘한미약품이나 한미사이언스는 내일 건드리지 마라. 내일 계약 파기 공시가 나온다’는 내용이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오후 7시6분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e메일로 처음 계약 파기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준비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려 다음 날 오전 9시29분에야 공시를 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자조단 관계자는 “면담 조사에서 한미약품 관계자들이 밝힌 계약 해지 인지시점과 제보 내용상 정보 유출시점에 차이가 있다”며 “e메일 통보 이전에 이미 정보가 유출됐는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조단은 지난달 29일 장 마감 뒤 나온 한미약품의 호재성 공시 역시 사전 유출됐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1조원대 기술 수출 계약이 체결된다고 29일 오후 4시30분에 공시했는데, 이 사실이 이미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 사이에 퍼져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자조단의 조사는 다음주 중 한미약품의 기술 계약·공시 담당자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결과가 나오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들의 통화 내역이나 메신저 대화 내용에서 정보 유출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 내부자가 정보를 빼낼 때는 증거가 뚜렷하게 남는 메시지보다 전화 통화나 직접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지난해 3월 한미약품 미공개정보 유출사건에서도 관련자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문자메시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을 피했다. 자조단 관계자는 “임직원 휴대전화 분석만으론 잡아내기 힘들 수 있다”며 “조사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번 한미약품의 늑장공시 사태를 계기로 공시제도와 공매도 규제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 국감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미약품 사건과 관련해 공매도 문제와 공시 관련 문제를 전반적으로 분석하겠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공시·공매도제도가 투자자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자율공시 사항인 기술 이전을) 의무공시로 바꾸는 것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며 “공매도로 인한 피해가 늘면서 많은 개인투자자가 공매도제도의 전면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상욱 의원은 “한미약품의 호재공시를 보고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이 눈물을 흘렸다”며 “현재 3일 영업일 후 증권사별 거래량만 알 수 있는 공매도 공시제도는 개인투자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이날 모건스탠리와 UBSAG는 지난달 30일 한미약품에 대해 대량으로 공매도 주문을 냈다고 거래소에 공시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실제 공매도 세력이 아니라 주문을 대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임 위원장은 일부 지적에 공감한다면서도 공매도 금지 같은 강력한 규제 도입엔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이기 때문에 한국만 폐지할 순 없다. 금융위기 시 특별히 공매도를 제한한 적은 있지만 평시에 전면금지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공매도 공시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럽도 우리와 기준이 비슷하다. 실효성이나 국제적 기준에서 한계가 있다”는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의원들은 한미약품 불공정거래와 관련된 기관투자가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더민주 김영주 의원은 “한미약품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공매도한 모든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자에 대해선 사실이 밝혀지면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해 달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행법상 수시공시의 허위·부실공시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 대상이 아니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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