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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대화와 난국타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시안게임 기간 중 정국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겠지만 대회가 끝나면 급속하게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속에 여야 간 고위대화가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다.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헌특의 1차 활동시한인 9월말까지 권력구조에 대한 합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전 대통령에게 단독회담을 제의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대해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은 『헌특이 정상화 기미를 보이고 정기국회가 본격 가동하면 여야 대표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말로 고위대화의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김영삼 신민당 고문도 관훈클럽회견에서 『평화적 방법으로만 민주화를 쟁취해야 한다』고 전제, 헌특에서 합의개헌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시국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개헌정국의 벽을 어쩌면 대화를 통해 극복할 수도 있겠다는 한 가닥 희망을 걸게 해준다.
말로는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상대방보고만 타협과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국교착의 원인이 있다고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합의개헌이 안되면 파국이 닥친다는 점에서 여야의 인식은 같다. 그러나 집권당이 생각하는 「합의」는 내각책임제로의 합의고, 야당이생각하는 「합의」는 대통령 직선제로의 합의다. 그게 안되면 큰일난다는 식의 엄포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공식대화의 장인 헌특이 마련되어도 정국은 원점을 맴돌고 있는 채 한발 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이처럼 대치상황이 계속되면 이 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국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고 무겁게 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평화적으로 개헌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국회 헌특을 정상 가동시켜 그곳에서 어떤 합의점을 찾아내는 길뿐이다. 물론 그 같은 합의는 여야 모든 세력의 이해가 일치되는 것이 아니어서는 불가능하다.
신민당의 이 총재가 고위회담을 제의한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헌특은 여야의 견해일치를 반영하는 쇼윈도는 될 수 있어도 그곳이 곧 합의를 도출해내는 전권을 위임받은 기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정국을 파국없이 극복하는 방법은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해 풀어 가겠다는 자세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파국의 예고는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가라면 입에 올려서는 안될 말이다. 엄포나 위협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파국적 국면을 모면하고 순리로 정국을 풀어야할 책무가 바로 정치인들에게 지워져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 밀도있게 깨달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여야의 책임있는 정치인들은 파국을 막기 위해 당장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때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권력구조가 내각책임제냐, 대통령 중심제냐는 것은 오히려 2차적 관심사에 불과하다.
어느 제도를 채택하건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따라서 의원내각제가 되면 민주화가 되지 않는다든지 대통령을 직선하면 독재로 흐를 우려가 있다든지 하는 논의는 부질없는 말장난으로만 비쳐지는 것이다.
아시안게임 기간 중 정쟁은 지양될 것으로 보인다. 20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가 대회가 끝나는 10월 6일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가기로 여야가 합의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우리는 정국이 잠정 휴전되는 이기간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유용한 기간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파국은 어떤 형태의 것이건 정치인의 무능 탓이고 국민 여망에 부응 못한 결과로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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