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분식회계 기업에 8조 신규대출…여신지침도 안 지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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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2014년 회계감리에서 효성의 분식회계 혐의를 포착했다. 1998~2005년 계열사 합병 과정에서 부실자산을 유형자산ㆍ재고자산으로 분류해 자기자본 1조3350억원을 부풀린 내용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같은 해 7월 효성에 과징금 20억원, 감사인지정 3년, 대표이사 해임권고를 포함한 중징계를 내렸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효성이 징계를 받은 이후에도 “여신을 중단하고 회수를 하면 기업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2110억원을 새로 대출해줬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리가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산업은행이 분식회계로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은 기업에 8조원 이상의 신규대출을 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선동(새누리당) 의원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대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200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금융감독원 회계감리에서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기업 36곳에 8조807억원을 새로 대출해줬다. 산업은행 여신업무 내부지침에는 회계감리에서 고의ㆍ중과실 처분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여신 취급을 중단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산업은행은 고의ㆍ중과실 등의 혐의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13개 기업(1조1220억원)에 신규대출을 해 줬다.

신규대출 금액이 가장 큰 곳은 한솔제지(2673억원)다. 이 회사는 2011년 투자손실을 회계장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혐의로 과징금 10억원과 감사인 지정 1년의 처분을 받았다. 여기에 외부감사 방해 혐의로 검찰에 통보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산업은행 조치와 한솔제지 내부 조치로 위반 내역이 해소돼 신규 여신 취급에 문제가 없다’며 대출을 해 줬다. 쌍용양회도 2012년 유가증권 매각이익을 부풀린 혐의로 과징금 20억원과 검찰고발 등의 중징계를 받았지만 이후 7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이때도 산은은 한솔제지 때와 마찬가지 논리를 들어 신규대출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전선은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나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두 번 모두 채권단 자율협약이 진행중이라는 짧은 설명과 함께 총 1060억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언급된 기업 중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생을 위해 불가피하게 신규자금을 지원한 기업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을 해 주는 기관의 특성상 대출 규모만 산업은행보다 작을 뿐 비슷한 논리로 분식회계 기업에 신규대출을 해줬다. 2009~2016년 6월 금감원으로부터 회계처리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39개 기업에 2206억원을 새로 대출해줬다.

김선동 의원은 “국책은행이 기업의 분식회계에 위험성에 얼마나 무신경한지를 보여준 사례”라며 “고의와 중과실로 분식회계를 한 회사에는 신규여신을 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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