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은「민주화」의 기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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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헌정국과 관련, 개헌문제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선거법이다. 당사자인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권을 행사할 국민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이해가 걸려있다.
현재 개헌문제도 타결의 기미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설혹 합의개헌이 된다해도 선거법협상이 성공하지 못하면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국회의원 선거결과가 정권의 향방과 직결되는 내각책임제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중심제라 해도 그 결과가 정치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선거법 개정은 헌법문제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는다.
선거법이란 한마디로 게임의 룰이다. 따라서 공정성과 공명성이 생명이다. 이 당의 만성적인 정치 불안의 원인은 결국 그 동안의 선거가 공정성과 공명성을 잃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선거의 공정성 상실이 권력의 정당성 위기를 낳고 그것이 한국의정치적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지난번 총선을 통해 확연히 증명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구 인구의 불균형이다. 헌법은 평등한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선거구에 따른 불균형은 엄청나게 크다.
가령 최대선거구인 서울동대문구와 최소선거구인 전북의 진안-무주-장수의 인구비율은 5·26대1이나된다. 동대문구의 한 표의 무게는 진안-무주-장수 구의 5분의1도 채 안 된다. 선거구 획정을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다해도 이것은 분명 헌법위반이다.
유신이래 존속되고 있는 1구2인 제가 집권당 후보의 도시선거구 당선을 노린 제도란 비판이 나온 지는 오래된다.
전국구 역시 헌법이 못박고 있는 비례대표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제1당에 무조건 전국구 의석의 3분의2를 배분한다는 것은 비례대표제의 정신에 어긋남은 물론이다.
비례대표를 존속시킬지 여부는 앞으로 여야협상에서 결정될 문제겠으나 그것이 비례대표인 이상 득표비율로 하건, 의석비율로 하건 비례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어야만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 못지 않게 공명성도 중요하다. 선거의 공명성은 투 개표과정의 공명성만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투 개표과정 못지 않게 선거운동과정도 공명해야 한다.
현행 선거법은 공영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관권과 돈을 배경으로 한 불법·탈법은 다반사처럼 성행되어 왔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할 공무원들이 공공연히 여당의 선거운동을 해온 터라 공무원들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 된 것이 현실이다.
현행 선거법은 또 선거과열을 막고 비용을 감소시킨다는 명분에서 선거운동의 자유도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 법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가 없게되는 법이다.
현재의 선거법이 그렇다. 지역구국회의원가운데 탈법을 하지 않고 선거법대로 운동을 해서 부선된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는가.
이와 같은 문제점 지적을 통해 앞으로의 선거법개정이 어떤 방향에서 이룩되어야 하는가는 자명해진다.
그것은 투표가치의 등가성부터 보장하고 선거운동과정과 투 개표과정의 공명성으로 요약된다. 더욱이 지자제의 실시로 지방의회가 구성되면 국회의원은 지역대표성보다는 국민대표성에 더욱 충실해야만 한다.
정권의 향방이 걸린 선거법을 놓고 단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정당의 입장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권력의 정당성은 공정하고 공명한 선거를 통해서라야만 얻어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페어플레이」를 해서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생각을 팽개치고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승리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국민여망인 민주화는 요원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정 무사한 마음가짐으로 개헌 및 선거법 협상에 임해야만 만성적인 정치불안과 정통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여야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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