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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망가진 사회 관심망이 또 아동학대 살해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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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비극적 사건이 또 발생했다. 3년 전 입양한 여섯 살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태워 암매장한 양부모에게 어제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올 초 발생한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이나 실종 한 달 만에 암매장 상태로 발견된 평택의 일곱 살 원영군 사건처럼 이번에도 부모가 범인이었다. 아동 대상 범죄를 추방하겠다며 정부가 큰소리쳤지만 헛구호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엊그제 발생한 여섯 살 여아 사건도 ‘학대 후 살해’라는 이전 수법을 빼닮았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도 포천에 사는 엄마(30)는 지난달 29일 딸이 식탐이 많다는 등의 이유로 온몸을 투명테이프로 묶고 17시간 방치해 숨지게 했다. 그러고선 다음날 남편(47) 등과 함께 시신을 야산으로 옮겨 불에 태운 뒤 암매장했다고 한다. 범행을 숨기려 지난 1일 인천 소래포구 축제 행사장에 들러 허위 실종 신고까지 했다니 소름이 돋는다.

 이번 비극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예방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아이가 한 달 전부터 유치원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이웃이나 유치원이 무관심했던 것으로 드러나서다. 평소에도 학대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큰데 이웃의 신고가 없었다고 한다. 정부가 그간 10차례나 아동학대 대책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었지만 기본적인 ‘사회 관심망’조차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준식 사회부총리가 빅데이터 활용 등 보완 대책을 내놓던 날(9월 30일) 이 아이가 매장된 것이 그 상징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불통인데 100가지 대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동학대 범죄 예방은 온 국민이 나서야 할 국가적 과제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2세 미만 아동 197명이 살해당했고, 학대 건수도 4만999건에 이른다. 모두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어른들이 저지른 만행이다. 이런 범죄를 막으려면 ‘양육=부모’라는 통념을 깨고 문제 가정에 공권력이 개입해 친권을 제한해야 한다. 이웃과 주민자치센터, 학교 등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범사회적 관심망의 재정비도 시급하다.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