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납득하기 어려운 한미약품의 도덕적 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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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미약품이 지난달 30일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해지 사실을 늑장 공시함으로써 투자자 보호 의무를 저버린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오후 4시33분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표적항암제 기술 수출계약을 맺었다는 호재성 공시를 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7시6분 베링거인겔하임에서 폐암 표적치료제 기술 수출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고도 이튿날 장이 개장한 후인 오전 9시29분에 공시를 했다. 호재와 악재 공시를 시간차를 두고 함으로써 개장 직후 오름세로 시작했던 주가가 장중 20% 이상 폭락하는 등 널뛰기를 했다.

 법적으로 공시는 24시간 내에 하도록 돼 있으므로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약품은 바이오·제약의 대장주로 기업 주가가 전체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민감한 종목이라는 점에서 기업 역시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한데 한미약품의 행위는 시장의 의심을 살 빌미를 제공했다. 이 업체는 “거래소와 협의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상장기업은 ‘자율공시 시스템’으로 협의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해명을 납득하기 어렵다. 호재 공시를 해놓고 악재 공시를 30분간 미루는 바람에 그 사이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봤다. 또 이날 하루 동안 비정상적으로 공매도 물량이 쏟아진 점 등으로 일부에서 미공개 정보 활용 시간을 벌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이런 의혹들에 금융당국도 미공개 정보 이용과 주가조작 등 전방위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중소기업으로 신약개발에 노력해 8조원대 기술수출 신화를 일구며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신약개발의 특성상 기술개발 중도 폐기와 계약해지 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일로 신약개발이 중단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 악재는 투자자·협력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정보를 빨리 공개하는 게 기업의 의무다. 한미약품의 위기는 계약해지가 아니라 도덕성과 정직성을 의심받는 상황을 초래한 데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