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가 한국인이 아니라면…〃-신채호 선생의 국적회복…박성수(정문연 교수 한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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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단재 신채호 선생이 무국적자로 방치돼 오다가 지난 1일에야 합법적인 한국인으로 인정됐다는 2일자 중앙일보기사를 읽고 놀랐다. 놀랐다기 보다 충격을 받았다.
만일 단재 선생의 외아들 신수범씨가 돌아가셨거나 안 계셨다면 선생은 영원히 무국적자로 남을 뻔했지 않았겠는가고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는 실수요, 망신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단재 선생처럼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 이가 어디 있었는가. 그런 분을 광복40년 동안이나 자질구레한 법조문에 구애되어 국적회복을 미루어온 사람들의 상식이 의심스럽거니와 도리어 그분들이 진정 한국인인가를 되묻고 싶다.
지금 가로 늦게나마 천하가 원하는 민족사가요, 항일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을 영광스럽게도 대한민국 호적에 올려 드렸다니 다행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혹시라도 단재 선생처럼 나라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으로서 아직까지 그 원혼을 풀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하루바삐 떳떳한 한국인으로 모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단재 선생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어제 중앙일보에 소개된 간략한 약력에서 알 수 있듯이 항일 독립투사요, 민족사관을 정립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였다. 단재의 이 두 얼굴 가운데 필자는 앞의 얼굴보다 뒤의 얼굴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추위와 굶주림의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한결같이 그가 정립해놔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참 한국, 참 한국인, 참 한국사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참다운 한국의 모습과 참다운 한국인상은 아직도 뚜렷하게 연구되고 의식되어 있지 않다. 그 근본이유는 참다운 한국사가 밝혀지고 교육 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재가 벌써 70여년전에 간파했던 우리들 한국인 자신의 정신적 질환을 이제서야 깨닫고 일본역사교과서가 왜곡되어 있다느니, 우리역사교과서도 잘못되어 있다느니 야단인 것을 보면 그는 선각자의 한 분임에 틀림없다.
역사가로서의 단재의 머리는 한국근대1백년사가 남긴 유일한 천재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머리에 강렬한 나라와 겨레 사람의 가슴, 그리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붓끝, 즉 사필이 쥐어졌으니 그런 분이 어디 또 흔한가. 이분을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누구를 한국인이라 하겠는가.
만일 그가 일본인이나 중국인이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으로 모셔야할 분이었다.
1936년 2월 추운 겨울날 여순 감옥에서 남편이 위독하다는 비보를 받고 박자혜 여사는 아들 수범씨를 업고 급히 달려갔다. 단재의 유언은 간단했다.
『내가 죽거든 왜놈들의 발길에 채이지 않게 화장해서 그 재를 서해바다에 뿌려주시오.』
얼마나 간절한 그의 애국심을 한국적인 반어법으로 표현한 말인가. 박 여사의 가슴에 안겨 말없이 귀국한 그의 원혼은 일제의 민적이 없다는 이유로 안장조차 하지 못하다가 어느 한국인 면장의 양해로 지금의 청주 고완에 묻혀 오늘에 이르렀다. 비석엔 만해 한용운의 필적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있다.
제나라의 제 민족이 살수도 없거니와 묻힐 수도 없다는 암흑시대에 밝은 아침햇살이 비친지는 어언 41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밤인지 낮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일제하인지 대한 민국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산의『목민심서』라도 한번 읽고 진정한 청백리란 어떤 사람을 두고 말하는지를 다시 한번 공부하기를 권하고 싶다.
역사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백리란 단지 법대로만 하는 사또(수령)를 두고 말하지 않는다. 법을 지키는 수법 이외에 애민정신이 있어야 참다운 청백리란 것이다. 아득한 봉건시대에도 이처럼 이도가 무엇인지 분명했었는데 민주 대한민국에도 이도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만저만 시대착오가 아닐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단순한 대한의 민이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애국열사요, 건국공신의 한 분이시다.
이분을 늦게나마, 아니 너무 늦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모시게 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면서도 한편 진심으로 선생의 새 탄생을 축하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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