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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대주주, 빛과 그림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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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호 31면

1908년 10월 1일, 포드자동차가 모델 T를 출시했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포장 도로가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자동차는 드물고 귀한 사치품이었다. 출시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끈 모델 T는 1927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1500만대 이상이 팔렸다. 모델 T가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것이다.


포드자동차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모델 T를 중산층도 누릴 수 있는 차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대량 생산 공정에 혁신을 거듭했다. 그 결과 1909년 825달러이던 가격은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1925년 260달러까지 떨어진다. 2016년 시세로 맞춰 보면 2만1700달러에서 3510달러로, 6분의 1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동시에 근로 조건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1914년 도입된 ‘일당 5달러’ 방침은 당시 포드자동차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일당을 두 배 넘게 올리면서 근무 시간은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직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실력 있는 근로자들을 모집, 유지할 수 있었다. 1926년에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더 높은 소득과 더 긴 여유 시간을 갖게 된 근로자는 더 많이 포드 자동차를 샀다.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되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담한 변화였다.


회사의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헨리 포드는 외부 간섭 없이 일하고 그 성과는 온전히 챙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1919년 포드는 단 한 명의 자식인 에젤 포드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포드자동차의 모든 투자자들로부터 지분을 사들여 포드자동차를 명실공히 포드만의 회사로 만든다. 헨리 포드가 56세, 에젤 포드가 26세였다. 회장직을 넘겼지만 헨리 포드는 최종 결정 권한을 놓지 않았다. 에젤 포드가 암으로 사망한 1943년에는 80의 나이에 정신 상태도 온전치 못했지만 다시 회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2년 후인 1945년에 결국 손자인 헨리 포드 2세에게 회장직을 완전히 물려주었지만, 결정 권한을 양보하지 않고 행사해온 헨리 포드의 집착은 전설처럼 전해온다.


이러한 철학은 1956년 헨리 포드 2세의 재임 중 포드자동차가 상장될 때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회사를 상장한다는 것은 대중에게 주인의 권리를 파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인의 권리란 두 가지다. 회사에 이익이 났을 때 배당 받을 권리와 회사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회사 일을 결정할 권한은 주주총회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즉 의결권으로 표현된다. 포드자동차는 상장될 때 주식을 A와 B 두 종류로 나누어 회사 가치 95%에 해당하는 A 주식은 한 장에 의결권 한 표, 5%에 해당하는 B 주식은 한 장에 16 표를 부여했다. 그리고 A 주식만 대중이 살 수 있도록 하고 B 주식은 포드 일가만 갖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포드 일가는 40%의 결정 권한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B 주식이 포드 일가 외부로 팔릴 때는 A 주식으로 바뀌도록 했다.


이렇게 확고한 결정 권한을 갖는 ‘오너 대주주’의 존재엔 양면성이 있다. 한 면은 오너 일가가 포드자동차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이다. 회사가 재산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그들에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면은 오너 일가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 나는 일을 벌일 개연성이다. 이익은 온전히 오너 일가가 챙기지만 회사의 손해는 다른 주주들과 나누기 때문이다. 대주주 존재의 장점과 단점 중 어느 쪽이 더 클까? 지금까지 존속하는 것을 보면 포드자동차의 경우에는 대체로 장점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은 특히 최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에서도 드러났다.


모델 T 출시 100년이 되던 해인 2008년,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큰 위기를 겪었다. 2003년부터의 고유가로 연비 경쟁력이 떨어지는 미국차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근로자 복지 부담이 가중됐지만 강한 노조 때문에 복지 제도를 바꿀 수도 없었다. 거기에 금융위기까지 닥친 것이다. 결국 자동차 빅3 중 GM과 크라이슬러는 2009년에 우리나라의 법정관리와 비슷한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그러나 포드자동차는 다각도의 구조조정으로 2009년에 흑자로 돌아섰다. 오너인 포드 일가를 포함한 경영진의 생존 노력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포드자동차와 GM, 크라이슬러가 다른 점이 오너 대주주 존재 여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가 특히 위기시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최근 조선업·해운업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야 세계적인 경기 하강에 있지만, 그 과정에서 대주주가 오히려 해가 된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산업은행이 31.5%의 지분을 갖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사실상 정부가 오랫동안 대주주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임직원들의 각종 비리와 수조원의 회계 분식까지 한게 밝혀져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운 위기에 놓여있다. 사기업인 한진해운의 경우 최대주주인 오너 일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경영 행태가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한진해운은 ‘오너 대주주’의 단점이 장점을 누른 경우다. 대우조선해양은 정부가 대주주라는 점에서 발생한 구조적 병폐를 보여준다. 정부가 대주주라는 것은 명분상 국민이 주인이지만 실상은 관료와 정치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관료와 정치가 나쁜 결정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산업은행이 낙하산 인사에 시달리고 산업은행을 통해 수많은 기업들이 통제되다 보니 공공성과 효율성이 희생되고 정치권 눈치보기와 ‘낙하산 잔치’가 남은 것이다. 이 와중에도 비교적 정상화에 성공한 사례들도 있지만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최악의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법’이 제정된 것이 1953년이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 산업은행은 산업을 육성하고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도 산업은행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정치 권력에 필요하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존속되는 것은 아닌지 이참에 따져봐야 할 것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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