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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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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민정당이 궁한 처지에 몰려 있다는 상황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아니하다. 법제정권력이 부여되지 않는 국가보위입법회의법을 자의로 만들어 그에 기초하여 출범하였으니 확실히 정치적 정당성과 법적 정통성에 하자가 있어 그 하자의 치유를 위해서도 현 헌법의 개정은 역사적 필연성의 문제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호헌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여 개헌 대강안이 나온 것 만은 진이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72년 유신독재이후 현재까지 연면해 오는 민족혼의 흐름, 민중의 몸부림으로써의 민주화개헌요구의 양심세력·민주세력, 곧 대다수 국민들에게 직선대통령중심제보다도 더 좋은 민주개헌을 하는 양 하다가 결국 수상이란 이름의 변형된 대통령간선제를 통하여 집권연장을 기도하고 있다.
위장된 재집권의 기도에 충실하려 하는한 진이보는 다시 원점에 돌아올 것이다.
개헌 없이도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제반 민주화조치, 이를테면 항상 논의되어 온 위헌적인 많은 법령을 개폐할 준비부터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사에 「위대한 합의」로 기록될 수 있는 합의 개헌의 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현 헌법체제를 반성하고 깨끗한 손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비판되고 반성될 대상은 「간선」 대통령제인 것이지 「직선」을 포함한 대통령제 전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선대통령제에 대한 단순 대항논리로서 고육을 하면서 간선수상무책임제를 선보이고있다.
그러면 민정당개헌대강안을 구체적으로 간단히 검토해 보자.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한다면 어째서 4·19이념을 현양하지 아니하려 하며 국민저항권을 외면하였는지?
민족통일에의 민족적 염원에 충실하려 한다면 그 또한 4·19혁명을 거양했어야 했고 현재의 평화통일 정책 자문회의를 단연 배제하고 국민적 정당성이 보다 강한 국회나 정당의 자문으로써 평화통일을 지향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형태, 소위 권력구조 부분에서 역시 법적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문제점이 허다하다. 우리 사회의 정당 사정, 공무원제도, 경제·사회·교육·문화등 제반 분야의 모순과 갈등, 분단문제등 정치문화상황에서 고전적인 의원내각제가 결코 수용될 수 없고 타당할 수 없다는 논지는 생략하려 한다.
대강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 고민을 보여주듯이 수상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주고, 2년임기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기독재까지 상정함으로써 내각책임제가 아니라 수상무책임제로 되어 권력분산 운운이 무색할 지경이다.
더우기 국회의원 선거제의 하자는 바로 정부의 정통성에 연결되므로 국민의 평등한 정치참여권의 원칙을 헌법에 표시해야만 한다. 현대는 한사람이 한표를 가져야 한다는 문제에서 더 나아가 한표의 값·무게는 같아야 한다는 투표가치의 평등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주소」때문에 부당한 차별대우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나 강동구에 주소를 두었다 하여 전남북도의 동북부지역(진안군·무주군·장수군)에 사는 사람에 비하여 6분의1 가치밖에 없다는 것은 비논리요, 모순이다.
경기도나 경상북도가 똑같이 2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시켰는뎨 선거인 수를 보면 경기도의 경우 백만명이 많으니 그 백만명은 있으나 마나한 「유」권자인 셈이다. 선거구획정에 있어서 인구 수 균형의 문제, 즉 투표가치의 평등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였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의 유착은 예견되지만 국회내의 반대당의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지못한 흠 또한 보인다. 국정감사권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군장성, 고위직 검찰·경찰, 고위외교관의 승진등에 있어서의 국회의 견제기능도 전혀 검토마저 안된 듯 하다.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정도선에서 긋느냐하는 어려운 탁상고민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논리로서 제도를 검토하는데서 오는 당연한 고충일 것이다. 또한 상정한 조건 이외의 상황이 전개될 것도 예상되므로 제2공화국에서 실패한 경험, 다른 많은 나라의 내각이나 정국의 불안정에 비추어 어떤 묘안도 우리의 상황에서 성공키 어려울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아니한 것인데 집권당이 사실상 대법원장을 임명해서야 되겠는가? 현행의 제도 그대로를 답습하자는 것인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요, 민주화의 의지가 거의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위기관리기능과 관련하여 계엄의 요건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고, 군법회의 관할을 제한할 필요가 있고, 또 비상조치권을 축소 조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 부분에 전혀 개선하려는 흔적이 없으니 현안대로라면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수상독재, 혹은 일당독재에 부닥치게 될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병환은 임기응변식 대증요법으로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통일에 보다 접근되고, 국민이 주인으로서의 인간 대접을 받고, 모든 분야가 공평한 민주화로 갈 수 있는 근본적 원인치료가 요청되는 시대 상황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개헌의 논의와 내용은 일시적 논리상의 문제가 아니라 4천만 국민, 6천만 민족의 존재와 당위의 문제-역사적 필연의 문제인 것이다. 하늘의 뜻대로, 아니 국민의 뜻대로의 문제임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다시 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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