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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GSP 무기로 개방압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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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일(현지시간)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일반특혜관세(GSP)회담은 미국이 GSP를 무기로 우리나라에 광범한 시장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회담 자체의 목적은 87년 7월부터 93년 7월까지 본격적으로 실시될 미국의 제2기 GSP실시기간 중 한국이 받게 될 혜택의 범위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3차례나 열린 GSP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상품·금융·광고시장개방, 지적소유권보호, 노동권보호 등을 GSP범위결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개방에 불응하는 경우GSP 수혜 범위를 축소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지난 5월2일 서울서 열린 제2차 협의 때 미국 측이 제시한 요구내용을 보면 ▲담배·오린지·쇠고기·컴퓨터 등 43개 품목(CCCN8 단외 기준)의 수입자유화 ▲화장품·필름·인화지·농약·건설장비 등 50개 품목의 관세인하 ▲외국금융기관에 대한 영업제한완화 ▲광고시장에 대한 합작투자 및 지사설치허용 ▲최저임금제 실시 등 노동권보호개선방안을 제시할 것 등 이 들어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이같은 요구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있다.
미국의 이같은 광범한 시장개방 요구에 대해 우리정부는 그동안 협의 과정에서 수입자유화 예시 제 및 관세인하 계획 등 단계적 자유화방침을 설명하고 노동권보호문제에 대해서도 노동3권이 보강돼 있으며 최저임금제도 오는 88년 실시할 계획임을 밝혀 미국 측의 이해를 요구했었다.
이번 회담에서는 특히 지난 7월의 301조 타결에 의한 지적소유권보호, 보험시장개방, 담배수입자유화조치, 그리고 섬유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크게 반영시킨 점 등을 들어 한국에 대한 GSP적용범위가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우리의 주장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미국이 어떤 대응자세를 보일 것인지 이번 회담에서는 확실히 알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정부는 이번 회담을 포함한 그 동안의 한미협상결과를 바탕으로 제2기 GSP운영계획을 결정, 내년 1월4일에나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어도 한국에 대한 혜택의 범위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미국의 시장개방요구를 1백% 들어줄 수 없다는 사정도 있지만 미국이 한국·대만·홍콩 등 이른바 선발개도국에 대한 GSP혜택을 줄이겠다는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불쾌한 것은 미국이 GSP를 시장개방의 압력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일반특혜관세는 선진국이 개도국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자국이 수입하는 일정품목에 대해 무관세특혜를 주는 제도다.
68년 UNCTAD(유엔무역개발위원회)의 권고로 71년 EC·일본이 앞장서 실시했다.
미국은 7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 실시해 왔으며 현재 진행중인 협상은 87년부터 93년 7월까지(제2기)적용될 GSP 수혜 범위에 관한 것이다.
제도의 취지나 내용으로 볼 때 GSP는 선진국이 개도국을 도와주기 위해 자발적·일방적으로 실시하는 것이지 개도국의 시장개방 압력수단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미국이 제2기 연장실시에 들어가면서 이 제도를 개방압력의 무기로 삼아 협상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미국의 무역적자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따른 국제수지 방어조치의 필요성이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뜻이지만 대국의 체면으로서는 할 짓이 아니다.
현재 미국은 세계 1백30여 개 개도국에 대해 GSP혜택을 주고 있으며 대상품목은 매년 다소의 증감은 있으나 85년의 경우 3천98개 품목에 특혜관세를 실시하고 있다.
이중 우리나라는 1천2백2개 품목을 GSP혜택을 받아 수출하고 있고 그 수출액은 대미수출의 15·4%인 16억5천5백만 달러에 달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85년의 GSP적용품목의 수입규모는 1백33억2천3백만 달러로 총 수입액 3천6백16억2천6백만 달러의 3·6%에 불과하며 그중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총 수입액의 0·46%라는 극히 미미한 양이다.
이처럼 작은 혜택을 구실 삼아 시장개방압력을 넣고 있다는 점에서 당하는 우리입장은 결코 개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 내 일각에서는 아예 GSP혜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이 지난 5월 2차 회담 때 제시한 내용 중에는 한국이 불응하는 경우 57개 품목을 GSP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들 품목이 제외되더라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1억2천4백만 달러 정도가 감소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정도라면 포기하더라도 무역수지에 큰 타격은 주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1천2백2개품목이 모두 제외되더라도 수출감소 액은 3억∼4억 달러에 그치리란 분석도 나와 있다.
다만 선뜻 이런 의견에 동조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GSP혜택을 포기하는 경우 우리에게 GSP혜택을 주고 있는 EC·일본 등 나머지 21개국도 혜택을 철회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또 GSP를 포기한다고 미국이 이미 입밖에 낸 개방요구를 철회할 것이냐 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미 무역 마찰은 갈수록 파고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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