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설리 기장과 약속했죠, 진실되게 당신을 보여주겠다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 톰 행크스 인터뷰

기사 이미지

설리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사고 당시 설리처럼 콧수염을 기르고 백발로 염색했다. [AP=뉴시스]

2009년 1월15일, 155명을 태운 US항공 여객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직후 새 떼와 충돌해 엔진 두 개가 고장난다. 절체절명의 순간, 전투기조종사 출신의 체슬리 설리 셀런버그 기장은 허드슨강 수면 위로 비상 착륙을 시도했고, 사건 발생 24분 만에 사상자 한 명 없이 전원 구조됐다. 208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비상 착륙을 결정한 리더의 결단과 책임감,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 작전, 사후 진상 파악을 위한 철저한 청문회까지. 위기관리 부재인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얘기다. 이를 소재로 한 실화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이 29일 개봉한다.

고장 여객기 허드슨강 비상착륙
승객 전원 구조한 기장 실화 다뤄
이스트우드 감독이 설리 역 제안
시나리오 17분 만에 모두 읽어

메가폰을 잡은 이는 배우 출신 명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그는 뻔한 재난영화나 영웅담을 피해간다. 사고 이후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셀런버그 기장(설리·톰 행크스)는 혹독한 유명세를 치른다. 국가운수안전위원회 청문회 위원들은 당시 그의 판단이 옳았는지 매섭게 몰아치고, 설리 역시 번민한다. 뉴욕타임스는 “영웅주의는 이스트우드 감독이 천착해온 주제 중의 하나”라며 “이 영화에서 감독은 아주 평범한 것들로 단단하게 속을 채운 비범한 영웅을 보여줬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고 호평했다.

기사 이미지

미국 현지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의 세 주역. 왼쪽부터 실존 인물 체슬리 설리 셀런버그 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톰 행크스. [AP=뉴시스]

설리 기장의 영광과 고뇌를 실감나게 연기한 톰 행크스를 지난달 LA에서 만났다. 이스트우드 감독이 “설리 역을 제안한 유일한 배우”라고 말한 이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톰은 당시 설리와 나이도 비슷하고, 멋진 존재감과 겸손함을 갖췄다. 굉장히 외향적인 듯 하지만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면도 설리와 닮았다”고 평했다.

어떻게 출연을 결정했나.
“당시 조금 지쳐 있던 때라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락을 받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17분 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 이후로 계속 작품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스트우드 감독과 함께 일한 경험은 어땠나.
“배우 겸 감독인 사람과 일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실감했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고, 굳이 필요 없는 내용을 설명하거나 내 해석을 듣느라 에너지를 쏟는 일도 없었다. 절대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가끔은 감독이 현장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오히려 준비는 더 철저히 해 가게 되고, 연기도 더 잘하게 됐다. 이스트우드 감독과 일했던 스태프들은 ‘테이크가 많지 않지만, 카메라에 담기는 내용은 많을 거’라고 했다. 굉장히 빨리 돌아가는 현장이었지만 오히려 그 가속도로 인해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측면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리 역은 어떻게 준비했나.
“설리와 4시간 정도 함께 시나리오를 훑었다. 현실과 다르거나 시나리오상에서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짚어줬다. 그가 가진 수십 년의 경력과 비행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담아내는 일이 힘들었다. 설리는 늘 비행을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사고 당시 딱히 별도의 상황판단이 필요 없었다고 한다. 몸에 밴 감각과 본능으로 비상 착륙을 결정하고 이를 해낸 거다. 아, 제일 힘들었던 것은 그와 같은 백발을 화학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내 두피가 아주 고통스러워 했다.(웃음)”
그간 여러 차례 실존 인물을 연기했는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건 정말 힘들다. 나름의 철학이 있다. 내게 허락된 범위 안에서 최대한 진실만을 담아내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주장이나 해석은 최대한 배제한다. 설리에게도 말했다. ‘좋건 싫건, 당신 역을 맡게 됐다. 영화로 만들려다 보니, 압축되거나 과장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당신이 하지 않은 말이 대사로 등장하기도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 진실 되고 정직하게 당신을 연기하도록 노력할 거다’라고.”
기사 이미지

영화 포스터. [AP=뉴시스]

보통 사람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역할도 자주 맡았는데.
“영화의 힘이란 게,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일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 평범한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들이 그래서 흥미롭다. 게다가 난 그다지 강렬한 페르소나를 지닌 사람도 아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인 사람이다. 배우로서는 한계일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일을 겪는 이야기에 끌린다.”
세계적 스타의 입장이니, 갑작스런 유명세를 겪어야 했던 설리에게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유명 인사로 산다는 건, 많은 경험과 실패, 그리고 지혜를 필요로 한다. 다행히 나는 배우이기 때문에 모든 경험이 다 연기의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끔 겪는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를 굳이 ‘극복해야겠다’고 느끼진 않는다.”

웨스트할리우드=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lee.rachel@koreadaily.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