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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마을 사무장’ 맡아 적응 기회, 농촌은 젊은 인재로 활력 찾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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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10면

지난 8일 오후 1시 전북 진안군 진안읍 원연장마을. ‘꽃잔디밥상’ 식당 안엔 손님 30여 명이 북적였다. 이들은 주로 갖가지 나물을 곁들인 연잎밥을 먹고 있었다. 이들 사이로 한 젊은 여성이 식당 홀과 계산대를 쉼 없이 오갔다. 이 마을의 사무장인 신지연(42)씨다. 이 농가(農家) 레스토랑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마을기업이다. 주민들이 직접 키운 농산물인 로컬푸드를 식재료로 쓰고 손맛이 빼어난 60대 아주머니 두 명이 요리를 한다. 지난해 8월 식당 문을 열자마자 전국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체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손님들도 제주도의 한 기업에서 식당을 통째로 예약했다.


신 사무장은 1년 전부터 식당 대표이자 마을사업추진위원장인 신애숙(54·여) 이장을 도와 마을 살림을 맡고 있다. 그의 남편인 김재현(49) 진안군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 사무국장이 바로 직전 마을 사무장이다. ‘서울 토박이’인 두 사람은 2014년 진안군 간사협의회에서 만났다. 간사협의회는 진안 지역 마을 사무장과 간사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마을 사무장과 간사는 인건비(월 120만원)를 각각 농림축산식품부와 진안군에서 댄다는 것 말고는 역할이 똑같다. 사무장·간사에겐 농촌생활에 적응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마을엔 젊은 인재들의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다. 진안군은 2006년 전국에서 처음 마을 간사제를 도입했다. 역대 간사 85명 중 51명(60%)이 지역에 정착했다. 마을 간사·사무장 제도가 귀농·귀촌의 ‘마중물’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12월 결혼한 신 사무장 부부는 현재 마을에서 운영하는 ‘귀농의 집’에서 살고 있다. 방 2개, 화장실 2개와 부엌 1개가 딸린 66㎡(20평)짜리 집의 월세는 10만원이다. 주민들이 공짜로 내준 텃밭에서 옥수수·고구마·고추·호박·가지 등을 기른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신 사무장은 건강이 나빠져 2014년 초 언니 부부가 사는 진안 하가막 마을에 휴양차 내려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애초 귀농·귀촌은 생각지 않았던 그는 당시 마을 이장이던 형부의 권유로 그해 6월 마을 사무장을 맡은 게 전환점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김 사무국장도 진안행을 택했다. 농대 졸업 후 서울에서 식품 관련 기업을 다녔지만 도시생활에 회의를 품고 사는 방식을 바꿨다. 사무장은 마을에서 벌이는 모든 사업의 서류 작업과 정산·회계를 한다. 식당에선 서빙도 하고 카운터도 본다. 농산물 판매를 위해 홈페이지와 SNS를 꾸준히 관리하며 업데이트하고 있다. ‘일인다역’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또 마을위원장(이장) 보조, 매달 마을 소식지 발행, 마을 농특산물 개발·판매, 마을 사업 지원 및 시설물 관리 등도 필수 임무다.


신 사무장도 처음엔 문화적 이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가 쿨하게 얘기해도 주민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에서 ‘뭘 해달라’고 서류 업무가 오면 우리는 도시 기준으로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는 진행이 너무 느리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제 농촌 원주민들과의 의사소통에 적응한 듯했다. 김재현씨는 “시골 어르신들은 가족 같은 정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크를 안 하고 불쑥 집에 들어오는 게 불편하다고 하는데 소외되는 사람이 없다는 면에선 오히려 장점이다”고 말했다.


신 사무장은 교육·문화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카들이 서울에서 살다 초등학교가 좋다고 해서 진안으로 왔다. 시골은 도회지보다 혜택이 많고 웬만하면 무상이다. 집중적으로 학교를 지원해 양질의 환경을 만들어주면 도시보다 파급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마을 주민 박병완(85)씨는 “사무장이 조합 일을 보는 데 큰 힘이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마을간사제와 비슷한 마을사무장을 매년 늘리고 있다. 2014년 451명, 지난해 475명에서 올해는 531명을 전국 농촌에 배치했다.사무장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급여도 월 120만원에서 132만~135만원으로 높였다. 농촌산업과 최춘태 사무관은 “수익성이 좋은 마을 위주로 마을사무장을 확대했고 마을의 자부담 비율도 조금 늘렸다”고 말했다.


진안=김준희 기자?이우연 인턴기자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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