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쌀 재배 면적 줄이는데 풍년 이유는? 온난화 때문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전북 정읍시에서 27년째 벼 농사를 짓는 이효신(52)씨. 지난해 논 1000㎡당 530㎏의 쌀을 생산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작황이 더 좋다. 이씨는 반갑지 않다. "재앙이다. 가격이 떨어지는 건 둘째고 판로 자체가 막혔다."

통계청은 다음달 올해분 쌀 생산량을 발표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쌀 수확량은 작황이 좋았던 지난해 (430만t) 수준을 넘길 전망이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대풍’이다.

그렇다고 쌀 재배면적이 늘어난 게 아니다. 재배 면적은 2013년 83만2625㏊(1ha=1만㎡)에서 올해 77만8734㏊로 3년 새 6.5% 줄었다. 쌀 재배 면적은 줄었는데 생산량이 오히려 늘었다는 건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의미다.

비밀은 뭔가. 온난화에 있다. 한국이 벼가 자라기에 적합한 기후로 변해간다. 올해 한국을 덮쳤던 유례 없는 폭염은 벼 생육에 최상의 조건으로 작용했다. 홍수ㆍ태풍ㆍ병충해 피해도 거의 없었다. 늦 가뭄까지 와 쌀 풍년을 부추겼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쌀(조생종 기준)이 익는 시기인 올 7월 27일부터 9월 14일까지 온도는 평년에 비해 섭씨 1도 높고 일사량은 1일 1.3시간이 길었다. 김준환 농진청 농업연구사는 “벼 작황은 등숙기(물보다는 햇빛이 많이 필요한 여뭄 때) 일사량에 특히 많이 영향을 받는데 올해 일사량이 유난히 많았다”고 말했다.
농가는 이런 대풍이 반갑지 않다. 현재 정부가 창고에 묵혀둔 쌀 재고량은 175만t에 달한다. 2년 만에 2배가 늘었다. 보관하는 데만 연간 5000억원이 넘게 든다.

재고량이 폭증하니 쌀 시세는 떨어지는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2일 쌀 20㎏ 도매 가격은 3만4000원이었다. 2010년 이후 6년 만에 최저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쌀 소비량은 매년 3% 이상 줄어드는데 벼 재배 면적 감축과 생산 조정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쌀 소비 확대 방안은 헛바퀴만 돌고 있다. 정부는 ▶쌀 가공식품 확대 ▶쌀 사료화 ▶대외 원조와 수출 증대 ▶저소득층 무상 지원 확대 같은 대응책으로 내놨지만 원가 손실, 수요 한계, 외교ㆍ통상 문제, 재정 부족 같은 이유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1일과 22일 당정 협의에서 농사만 지을 수 있는 농업진흥지역(절대 농지)을 단계적으로 해제하고 쌀 초과 생산분 35만~40만t을 격리(정부가 매입)하는 안이 논의됐다. 공공 비축미를 정부가 사들일 때 농가에 미리 지불하는 우선지급금을 현행(4만2000원)보다 올려 잡아야 한다는 여당 제안도 있었다. 모두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품질 좋은 쌀은 단위 생산량이 적더라도 높은 값으로 가치를 인정 받게 하고 값싼 사료용 쌀 품종은 별도로 개발ㆍ재배하는 차별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밀ㆍ보리ㆍ옥수수 같은 식량 작물과 쌀에 대한 차등 지원을 줄여나가고 작물 전환시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공급 과잉과 수입 대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평균적인 맛의 쌀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유도하는 국내 벼 정책 구조를 뿌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채윤경 기자 newea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