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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빅데이터 선점해 정밀의료 주도권 잡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평생 불로초 찾기에 매달렸던 진시황은 영생을 꿈꿨다. 2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꿈은 인간의 마음속에 여전히 꿈틀댄다. 시대가 바뀌면서 형태는 달라졌다. 내 몸이 지닌 정보에서 답을 찾는다. 바로 유전체(개인의 총유전자 정보)다. 개인의 각종 질병 위험도를 예측해 병을 예방하고, 개인 맞춤 치료로 쉽게 병을 고치는 ‘정밀의료’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열쇠는 유전체 빅데이터다. 이를 선점하려는 국가•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

전 세계가 유전체 빅데이터에 주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공지능 ‘왓슨’이 이미 의사의 실력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정밀의료 구현에는 미약하다. 암 진단 분야(정확도 96%)에 국한돼 있다. 유전체 빅데이터는 진단뿐 아니라 개인 맞춤형 예방•치료•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말 그대로 빅데이터여야 가치가 있고, 규모가 클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5년 연두교서에서 정밀의학 추진 계획(PMI)을 발표했다. 100만 명 이상의 유전체를 분석해 맞춤의학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은 이에 앞서 2013년 보건의료 빅데이터 통합센터(HSCIC)를 설립해 10만 명의 유전체를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지노믹스 잉글랜드(Genomics England)’라는 국영기업까지 세웠다. 중국도 정부 지원을 받는 BGI(Beijing Genomics Institute)라는 기업을 통해 유전체 빅데이터 싸움에 뛰어들었다. 2013년 세계적인 유전체 분석 회사인 컴플리트 지노믹스(Complete Genomics)를 인수한 뒤 저가 유전체 해독을 통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국제컨소시엄 ‘GSA’ 11월 본격 가동

경쟁은 치열하지만 빅데이터 구축작업은 아직 더디다. 영국이 야심찬 계획을 내놓은 지 3년이 지난 현재 8000여 명의 유전체 분석에 그쳤다. 목표의 8%에 불과하다. 미국 PMI의 경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바라보는 계획이다. 이유는 그동안 ‘전장유전체(whole genome)’ 분석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전장유전체는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총유전자 염기서열을 말한다. 즉 인간이 가진 32억 염기쌍을 전부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 유전체 빅데이터 시장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월 세계적인 유전체 분석 국제 컨소시엄인 ‘GSA(Global Screening Array)’가 꾸려지면서부터다. 컨소시엄의 구심점에는 미국 유전체 분석 하드웨어 선두업체 일루미나(Illumina)가 있다. GSA에는 구글이 최대주주로 있는 23앤드미(23andME)와 국내 유전체 분석업체인 이원다이애그노믹스지놈센터(EDGC)를 포함해 12개 업체가 참여한다. 컨소시엄은 올 11월부터 본격 가동한다.

1000만 명 유전체 데이터 확보 목표

GSA는 2년 반 동안 1000만 명의 유전체를 모으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3앤드미의 데이터가 120만 명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23앤드미가 이 정보를 모으는 데 8년이 걸렸다. 12개의 기업이 참여한다곤 하지만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8배 이상의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돌파구는 대상 정보의 집중과 저렴한 비용이다. GSA는 전장유전체을 분석하는 대신 75만 개의 유전자 변이 여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지 의학적으로 근거가 확보된 질병 위험도를 결정하는 인자다. 75만 개의 유전자 변이 확인 검사비는 보통 350~450달러 수준이다. 전장유전체 해독 비용(2000~3000달러 수준)보다는 저렴하지만 여전히 고가다.

일루미나는 GSA 참여업체들이 100달러 수준에 검사할 수 있도록 검사 칩 등 원가를 낮췄다. 100달러의 검사비 책정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분석을 위해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적정 비용으로 본 것이다. 너무 저렴하면 검사업체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비싸면 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미 전례도 있다. 23앤드미는 99달러로 비용을 책정해 100만 명 이상의 유전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주요 국가와 기업이 유전체 확보와 분석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보의 가치 때문이다. 빅데이터를 확보한 기업만이 유전체 빅데이터 및 정밀의료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다. 확보한 유전체 데이터가 정밀의료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그래서 유전체 데이터 규모가 기업 가치를 넘어 국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미 유전체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기도 했다. 23앤드미는 지난해 10월 1억15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받으면서 11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23앤드미가 보유한 유전체는 110만 명의 데이터였다. 한 명의 데이터당 1000달러 꼴인 셈이다. 또 미국 바이오 선두업체인 제넨텍(Genentech)으로부터 파킨슨병 전력이 있는 사람(3000명)의 유전체 정보를 활용하게 해 주는 대가로 6000만 달러를 받았다. 1인당 99달러의 검사비용을 받아가며 확보한 데이터로 2만달러씩 벌어들였다는 계산이다.

개인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각종 질환 위험도 같은 제한적인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받지만 업체는 유전체가 고스란히 담긴 검체를 제공받는다. 이 검체는 수검자 동의 아래 향후 전장유전체 분석에도 사용될 수 있다. 검사를 무료로 제공해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민간업체 유전자 검사 길 열려

시장이 활성화된 미국에선 민간 기업의 유전체 시장 진입이 수월한 편이다. 미 식품의약국(FDA)도 당초 검사 결과의 정확성과 유용성을 우려했으나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에 나섰다. 정부는 생명윤리법을 개정해 지난 6월 30일부터 민간 유전자검사기관에서도 개인이 직접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동안 의료기관만 개인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었다. 민간업체가 직접 유전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세계시장은 미국(40%), 유럽(30%), 중국(10%)이 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잠재력은 크다는 평가다. 국가 중심의 국민건강보험 체계 때문이다. 유전체 빅데이터는 그 자체보다 개인의 질환 정보와 결합할 때 가치가 더 높아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축적된 개인 질환 정보가 더해지면 질환 위험도를 예측하는 데 유리한 정보가 될 수 있다.

EDGC 이민섭 대표는 “유전체 빅데이터와 심평원의 의료정보가 합쳐진다면 세계 누구도 갖지 못한 파워풀한 빅데이터가 된다”며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이지만 맞춤의료의 강국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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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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