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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상변화서 스캔들까지|증시와 루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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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증시는 루머의 집산지다. 증시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의 별의별 루머가 떠돌다 사라진다.
증시에 퍼지는 루머는 주가에 영향을 줄만한 경제관련의 것이 단연 많다. 그렇지만 증시에 나도는 루머는 주식투자와는 전혀 무관한 것도 무수히 많다.
정치 기상도 변화에서부터 유명인사의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 폭넓게 걸쳐 있는 것이다. 증시에서는 이를「사이드(side)」라고 부른다.
따라서 인구(사람들 입)에 회자하는 모든 루머는 증시를 통해 흘러 나왔다고 해도 거의 틀림이 없다.
증시에 이처럼 각종 루머가 떠도는 이유는 증시가「돈」과 직결돼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과 직결된 루머는 「귀에서 귀로」 전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돈과 별 관계가 없는 이른바 사이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국관련 루머나 특정개인에 관한 스캔들 따위가 일시에 확산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증시루머의 특성 때문이다.
또 증시루머는 대부분 진원지가 확실치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럴싸하게 『누구에게서 들었다』 는 식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증시루머가 때로는 주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항상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전파속도가 매우 빠른데다가 과거경험에 비추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81년 가을부터 증시주변에서 「돈 많은 여인」 이란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나돌더니 82년에 장 여인 사건이 터졌고 명성 사건 때도 1년 전부터 『돈 있으면 상은 혜화동 지점에 가져가라』 는 말이 유행했었다.
또 지난해 공중 분해된 국제그룹의 경우에는 4개월 전부터 국제상사의 자금압박 및 부도 설이 나돌았었다.
최근의 일로는 지난 4월 24일 개장 초부터 국정관련의 악성루머가 떠돌면서 주가는 급전직하, 「4·24 대폭락」을 겪기도 했다.
증시루머가운데는 심심찮게 등장하는 고정메뉴도 많다. 한 달에 한번정도 오르내리는 것이 「금리」 문제다. 이 경우는 하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맞히는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긴 하지만 금리조정이 있을 때는 꼭 맞히는 적중력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밖에 개각도 뜸하긴 하지만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메뉴중의 하나다.
증시루머 가운데 특히 주가에 영향을 줄만한 개별기업의 움직임이나 경제 정책의 변화에 관한 소문은 검토단계에서부터, 심지어는 검토이전단계에서부터 루머로 번진다.
그만큼 빠른 정보는 곧 남보다 앞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증시루머는 꼬집어 누가 만든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루머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나오는 온갖 소문·소식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증시루머는 증시에서 발생하는 자료도 있고 거액상주투자자인 「큰손」을 비롯, 상장기업간부인 「내부자」, 정부당국자 등 각계의 이른바 「실력자」 들이 진원지일 것이라는 게 증시주변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밖에 증권회사의 임직원이나 증권회사를 갖고있는 대기업도 그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주식투자자중에는 인·허가 및 정책수립 관직이나 전 고위실력자, 기업과 관련이 깊은 사람들이 많아 각종 정보를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이 자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토록 확대유포 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이 같은 루트를 통해 증시에 떠도는 루머는 대체로 25개 증권회사의 투자 분석과에서 수집돼 삽시간에 전국 각 지점망을 통해 확산된다.
이때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라고 한다. 어떤 증권회사의 객장(영업장)에 나가있어도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루머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증시루머의 이 같은 특성 때문이다.·당초 증시루머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관련소문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도 않은 추세다.
증시루머의 기능이 다양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증시주변에는 루머만을 수집하는 「전문인」 들이 늘고 있다.
기업체는 물론 당국의 관계기관에서도 전담 부서를 두어 루머담당자를 증권가에 상주시키기도 하고 은행·단자회사·보험회사 등 금융기관에서도 증시루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단자회사의 심사 부나 보험회사 대출파트에서는 수집된 증시루머로 개별기업의 자금사정·경영상태를 파악, 여신의 위험을 사전에 체크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주로 홍보파트에서 이를 담당하고 있는데 보통 교통비와 식사비명목으로 하루 5천 원 정도를 보조받고 있다.
최근 증시규모가 커지면서 루머의 양도 많아지자 이를 수집, 분석하는 역할을 맡는 인원도 늘고있다. 특히 증권희사의 경우는 앞으로 있을 투자고문 업 겸업에도 대비, 이 부문의 확장을 서두르고있다.
수집된 루머는 완급에 따라 당일 보고되기도 하는데 주로 주단위로 상부 층에 보고돼 분석을 거쳐 경영전략 수립에 활용된다.
루머 중에는 그야말로 내용이 황당무계해 쑥덕공론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악성루머도 있고 때로는 경쟁기업에 치명타를 가하는 의·도적인 조작루머도 있다. 따라서 일반투자자들의 경우 너무 루머에 매달리다보면 때로는 약성루머에 걸려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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