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감기관들 "자료 폐기했어요" 제출거부 넘어 거짓 자료도

중앙일보

입력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피감기관인 한국국토정보공사로부터 최근 5년간 ‘공로연수자 적정성 여부’자료를 제출받았다. 공로연수는 명예 또는 정년퇴직할 직원의 사회적응을 위해 퇴직 6개월 전 1인당 50만원 이내의 비용으로 자격취득·어학학습 등의 연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황 의원에게 “2013년 제도를 시작한 이후로 총 61명이 연수를 받았으며 1억 1000여만원이 쓰였다”며 “모두 아무 문제가 없었다”라는 답변을 자료와 함께 제출했다. 그러나 황 희원이 19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를 통해 해당 기관의 감사 내역을 확인해보니 올해만 총 3건이 ‘부적정’ 사용으로 판정받아 내부 감사가 이뤄졌다.

연기학원 레슨비로 100만원, 대학입시학원 영어 교습비로 140만원 등을 썼다가 적발됐지만 국정감사 자료에는 ‘문제 없음’이라고 보고를 한 것이다. 황 의원은 “이런식으로 국회를 상대로 공공기관이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피감기관의 구태”라며 “고의로 허위 자료를 제출한 기관은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26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를 상대로 한 피감기관의 자료 제출 거부와 허위 자료 제출 사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가 무분별하게 자료를 요청하거나 불필요한 증인을 신청하는 갑질도 문제지만 피감기관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를 대며 자료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해 부실 국감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고용진 의원(더민주)은 지난 7월 미래부에 ‘창조경제혁신센터 성과자료’를 요청했으나 두 달 넘게 받지 못했다. 고 의원은 “창조혁신센터 성과는 법에 명시된 기밀자료도 아니고 개인정보와도 관련 없지 않느냐”며 “그간 대기업 동원 관치사업·실적부풀리기 사업으로 지적돼온 창조경제 혁신센터에 대한 국회의 정당한 검증권한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역시 통일부에 지난해 정보화사업 입찰 관련 자료를 지난 7월에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통일부는 이 의원실에 “자료를 폐기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해당 의원실에선 “입찰에 수십억에서 수백억까지 썼다고 하는데 1년도 안된 자료를 ‘파기했다’고만 하고 담당자가 전화도 제대로 안받는다”고 항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즘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선 ‘피감기관과 통화할 때는 녹음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생기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 보좌관은 “분명히 자료를 보내준다고 해놓고 국감 코앞에 두고 ‘그런적 없다’고 발뺌하기 때문에 녹음을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업무보고 때 자료를 요청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전화를 안받고 ‘회의중이다’라며 답변을 피해서 아예 직접 찾아가서 받아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