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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클린턴 건강이상 증폭, 대선 가도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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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50여일 앞두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건강이상설에 휩싸이며 대형 악재에 직면했다. 클린턴은 1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9ㆍ11 테러 희생자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가 1시간 30분 후 돌연 수행원의 부축을 받고 현장을 떠났다. 직후 클린턴은 인근 도로에서 밴 차량을 기다리던 중 수행원이 옆에서 붙잡지 않으면 혼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휘청거렸다. 클린턴은 특히 차량에 오르려 할 때 갑자기 무릎이 꺾이며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에 넘어질 뻔 했지만 경호원이 붙잡고 있어서 가까스로 부상을 면했다. 트위터엔 이 같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올랐고 유튜브 등을 통해 급속하게 퍼졌다.

클린턴은 고꾸라지면서 한쪽 신발까지 벗겨졌다. NBC 방송은 뉴욕 경찰이 이 신발을 현장에서 수거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이 부축을 받고 차량에 탑승할 때 경호요원들은 360도로 사방을 주시하며 경계에 나서 당시가 돌발 상황 임을 보여줬다.

클린턴은 이후 딸 첼시의 뉴욕 아파트로 가서 쉰 뒤 다시 자신의 자택으로 이동했다. 클린턴은 첼시의 아파트를 나설 때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오늘 뉴욕이 아름답다”고 대화를 나눴다. 취재진에겐 “(몸 상태는) 정말 좋다”고 답하며 문제가 없음을 과시했다.

클린턴의 주치의인 리사 발댁은 성명에서 “9일 클린턴이 계속 기침을 해 검진한 결과 폐렴으로 나타나 항생제를 투여했다”며 “오늘은 더위 때문에 탈수 증세를 보였고 현재는 회복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클린턴 캠프는 다음날부터 이틀간 예정됐던 클린턴의 캘리포니아 유세 일정을 취소했다. 클린턴은 12일 샌프란시스코ㆍ로스앤젤레스 등을 찾아 모금 행사를 갖고 연설도 할 계획이었다. 클린턴이 14일 시작되는 라스베이거스 유세를 소화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인 2012년 12월 장염에 걸려 실신해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을 일으켰다. 이후 혈전이 발견돼 한 달간 치료를 받은 뒤 완치됐다. 하지만 이날 클린턴이 사실상 졸도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돌며 클린턴의 대선 가도가 휘청거리고 있다. 주요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결격 사유가 된다.

그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캠프는 클린턴을 상대로 집요하게 건강이상설을 제기해 왔다. 트럼프는 “클린턴은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이슬람국가(IS)를 대적할 만큼 튼튼하지 않다”고 주장한 뒤 건강진단서를 함께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보수 블로거들은 인터넷에 클린턴이 뇌 손상으로 머리를 흔드는 발작을 한다는 발작설을 유포했고 트럼프 캠프 인사는 실어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류 언론들은 이를 근거 없는 흑색선전으로 일축했다.

그러나 이날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WPㆍ뉴욕타임스ㆍCNN 등은 일제히 클린턴 건강이 대선 이슈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엔 기질상 부적합하다”며 정신 상태를 문제 삼았던 클린턴의 선거 전략도 더는 구사할 수 없게 됐다.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클린턴이 신체 건강상 부적합하다고 강력하게 역공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건강 이상은 클린턴의 비밀주의로도 번지고 있다. NYT는 “캠프는 처음엔 클린턴이 왜 행사장을 떠났고 어디로 갔는지를 언론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클린턴은 지난 5일 행사 도중 기침을 멈추지 못하고 2분 가까이 이어가다 “트럼프를 생각하면 알레르기가 생긴다”며 웃음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날 주치의의 발표로 알레르기가 아니라 폐렴에 걸린 게 드러났다. WP는 “캠프는 11일 (클린턴의 건강 상태를 해명할 때도) 처음엔 이틀 전의 폐렴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클린턴 캠프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구심만 더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건강이상설이 불거지며 클린턴이 수세에 몰린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는 대선 승자를 단언하기 불가능한 예측 불허로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뉴스가 이날 발표한 애리조나ㆍ조지아ㆍ네바다ㆍ뉴햄프셔 등 경합주 4곳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과 트럼프는 해당 지역 모두에서 오차 범위 내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다. 특히 네바다ㆍ뉴햄프셔는 지난 6일 WP가 50개주 여론조사를 발표하며 클린턴 우세 지역으로 계산했지만 이번엔 초접전으로 나왔다. 또 다른 경합주인 플로리다ㆍ오하이오는 여론조사 기관마다 선두가 바뀌었다. CBS뉴스ㆍ유고브는 이날 플로리다주에서 클린턴 44% 대 트럼프 42%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오하이오주는 클린턴(46%)이 트럼프(39%)를 앞섰다. 그러나 사흘 전 퀴니팩대학 발표에 따르면 오하이오는 트럼프(41%)가 클린턴(37%)을 앞섰고, 플로리다는 동률(43%)이었다.

주요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를 집계해 평균치를 내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이날 현재 선두 클린턴과 추격에 나선 트럼프의 격차는 3.1%포인트다. 한달 전인 지난달 11일 6.9% 포인트와 비교하면 지지율 격차가 절반으로 줄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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