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청자 복지 높일 새 방송평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기사 이미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우리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3시간 이상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한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가 있다. 물론 PC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서도 다양한 콘텐트를 감상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방송 시청 시간이 다소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방송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유익한 프로그램을 접하고 있다.

지난 8월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열렸던 올림픽 경기도 방송을 통해 즐길 수 있었다. 양궁의 감격적인 전 종목 석권과 사격 3연패를 달성한 진종오의 환호, 그리고 116년 만에 부활한 골프에서 승리한 박인비의 투혼도 실시간 영상을 통해 생생한 감동을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정에서 편안하게 올림픽 금메달에 환호하고 아름다운 도전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방송’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방송은 우리의 생활 전반 깊숙이 들어와 영향을 주고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라고 하겠다. 그래서 방송통신위원회는 매년 방송 전반에 대해 방송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방송사의 재허가나 재승인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방송평가 제도가 방송사의 운영이나 편성에 대한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도 있어 왔지만, 2000년 방송법이 법제화된 이후 지속적 개선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즉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 발맞춰 평가 방법도 변해 온 셈이다.

특히 올해 들어선 방송평가 규칙이 대폭 개정됐다.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는 올 1월 개정된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송평가 세부 기준을 개정했다. 개정 과정에서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을 강화하고 품격을 높이기 위한 평가 기준들이 보도 내용과 편성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방송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계 등 전문가들과의 다양한 논의도 거쳐 방송평가에 대한 세부 기준을 확정했다. 개정 취지는 살리되 과잉 규제가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사 이미지

구체적 내용을 보면 우선 막말이나 자극적인 방송 및 편파 방송을 줄일 수 있도록 기준을 정비했다. 보도 내용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화하고 방송 내용의 정확성도 높이도록 했다. 또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재난방송 편성을 독려해 방송사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도록 했으며, 한류 콘텐트 활성화를 위한 콘텐트 투자가 확대되도록 기준을 만들었다. 방송 매출액 대비 투자 비용에 대한 평가 항목을 신설한 게 한 예다. 확정된 개정안엔 방송시장의 공정거래 질서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여기에 보도 분야의 편성에 대한 평가도 도입했는데, 프로그램 편성의 조화와 균형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이는 기존에 오락 분야만 평가하던 것을 보도 분야까지 확대한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백수오 사건’을 계기로 홈쇼핑 방송사의 허위 과장 광고 및 판매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대책도 마련했다. 소비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소비자보호원의 구제 내용을 방송평가에 반영하는 비율을 높였다.

이 밖에 유료방송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종합유선방송(SO)과 위성방송의 방송 채널 구성에 대한 공익성과 다양성 여부를 평가하는 항목을 신설했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하고 높이기 위한 조치다. 중소 방송사 보호를 위해 종합유선방송과 위성방송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맺는 채널 공급계약이 적정한지에 대한 평가도 강화했다.

이 같은 방송평가 제도는 외국에서도 ‘방송사의 공적책임 강화’를 위해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에서 방송사가 설립 목적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한다. 오프콤은 이 보고서에서 방송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전반에 대해 평가하고 편성 내용과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시청각고등평의회(CSA)는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편성, 시청자 보호와 사회 공헌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와 유사하게 독일은 프로그램 편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가의 특성에 맞게 내용이나 형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방송의 공공성과 시청자 보호라는 목적은 동일하다.

방송평가는 방송사들의 건전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방송의 품격과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제도는 좋은 방송을 만드는 밑거름이 돼 결과적으로는 시청자 복지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이 방송평가의 근본적 역할이고 방송평가 제도가 유지돼야 할 이유라 하겠다.

앞으로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평가를 수행하면서 방송사와 원활하게 소통하며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이런 평가 제도를 통해 유익하고 건전한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방송의 품격도 한 단계 높아지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시청자, 더 나아가 국민의 행복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최 성 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