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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잇따른 피의자 자살, 검찰은 무죄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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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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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전 수원지검장

검찰의 수사를 받던 롯데그룹의 고위 임원이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인과 유족에게 지극히 불행한 일이자 검찰에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계획된 일정에 차질이 오거나 앞으로 내놓을 수사 결과물의 한쪽이 허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수사를 받던 사람이 자살하는 일이 왜 잊을 만하면 다시 일어날까. 멀리는 정몽헌 회장부터 최근 성완종 회장에 이르기까지 근래 10년간 모두 90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사 중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개인마다 다양하리라고 본다. 고위 공직자나 기업 임원의 경우 평생 쌓아온 명예를 한순간에 잃게 되는 충격 때문일 수 있겠지만, 본인의 진술 여하에 따라 몸담은 조직에 막대한 타격이 오거나 윗선으로 책임을 추급할 연결 고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수사 중 겪은 모멸감을 삭이지 못해 욱하는 심정으로 결행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지켜보는 국민도 마음 편할 리 없다. 비리가 있다면 그에 대해 엄한 책임을 지우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수사 중 자살자가 나오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검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한건주의에 빠져 조사대상자의 항변을 들어주지도 않고 짜놓은 틀에 맞춰 밀어붙이는 수사 행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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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는 돌발 악재가 터진 후에 나오는 검찰의 입장 표명을 곰곰이 뜯어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한결같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수사 과정에 위법이 없었노라”는 취지다. 이런 입장 자체를 흠잡을 수는 없지만 사태의 반복을 막아 보겠다는 의지가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심리적 압박이 수반되는 수사의 속성상 어쩔 수 없으니 심신을 추스르는 것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뺌하며 속수무책으로 내버려 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수사에서 심리적 압박이 수반되는 걸 피할 수는 없다. 신체구금 없이 진행되는 임의수사에서도 그러하지만 압수수색이나 신체구금이 집행되는 강제수사의 단계에서 당사자가 느끼는 중압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집 안 곳곳을 뒤지는 드라마 속의 장면이 실제 상황으로 벌어진다. 어쩌면 가택수색보다 휴대전화 압수의 충격이 더 클지도 모른다. 수많은 거래처 번호와 주고받은 교신 자료가 고스란히 보존된 휴대전화가 탈취되는 순간, 알몸으로 길거리에 내쫓긴 듯한 당혹감 속에서 뇌가 마비된 듯한 무력감에 빠진다.

심리적 압박이 수사 과정에 수반되는 걸 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어서는 자살자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자살자가 나오는 걸 막겠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수사 방식의 이모저모를 따져 세련된 방식으로 다듬어야 한다. 개인의 권리의식이 크게 신장되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시대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 낡은 방식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화이트칼라는 모욕감을 줘야 자백을 받아내기 쉽다”는 낡은 수사기법이 전수되고 있지는 않는지 “전직 대통령, 재벌 회장들이 거쳐 간 그런 방에서 조사받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모멸감을 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수사라는 공권력의 집행에 범죄자가 무릎을 꿇는 것은 자신의 소행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초점을 맞춰 조여 드는 단죄의 칼날 앞에서는 좀처럼 항거하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질 문제가 아닌데도 헛다리를 짚고 추궁해 들어오는 경우 죽음을 불사하며 항거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 때문에 조사에 나서기 전 다른 증거물을 점검하고 숙지하는 등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한쪽 방향으로 몰고 가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방면해 버리는 안이한 접근이 사고를 부른다.

수사 방식을 세련되게 다듬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의 효율성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련된 방식의 정치한 수사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검사의 어깨가 가벼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검찰이 벌여 놓은 전선은 그 범위가 너무 넓다. 1차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사는 법률적 차원에서 사후적으로 개입하라는 것이 형사사법의 큰 틀이다. 지금처럼 검사가 경찰과 경쟁하듯이 여기저기 특별수사라는 명분을 걸고 나서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권력형 비리나 고도의 수사 역량이 필요한 범죄의 척결에 검사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수사지휘라는 검사의 본령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고 안티 검찰을 양산해 내는 기형적인 검찰 과잉을 바로잡는 것은 거창한 제도 개혁 없이 인력 운용의 개편만으로도 가능하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부터 누려온 달콤한 권력의 유혹에서 탈피해 한껏 벌여놓은 전선을 줄여야만 자살과 같은 사고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문 영 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전 수원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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