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NYT "북한은 미치기는 커녕 너무 이성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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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실험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통제불능"이라 말하는 등 북한의 잇딴 도발을 미치광이 행동으로 보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이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NYT는 10일(현지시간) '북한은 미치기는 커녕 너무 이성적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치 전문가들을 인용,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잇따른 도발을 하는 배경에는 생존을 위한 이성적인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이성적인 행동은 자기 보호를 최우선에 놓고 국가 이익에 따르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약하고 고립된 국가인 북한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언제 굴복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호전성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매우 이성적인 선택이다"라고 분석했다.

미 서던캘리포니아대의 정치 전문가 데이비드 C. 강은 "북한 지도자들이 국내외에서 하는 행동들이 혐오감을 자아내긴 해도 자국의 이익을 빈틈없이, 그리고 이성적으로 잘 추구하고 있다"며 "그런 경향이 지금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아주 철저하고 노련한 결정을 내려왔다"며 "그들을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할 줄 모르는, 비이성적인 지도자로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치 전문가인 데니 로이도 "'미치광이 국가'나 '무모한 도발' 등 북한에 붙은 꼬리표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호전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무장해 적들에게 미치광이로 보임으로써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간다는,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으로 최근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이자 미 조지타운대 교수인 빅터 차도 "북한 지도부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NYT는 "잔혹성과 냉정한 계산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의 몰락 등을 목도한 북한이 미군 기지와 남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줘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미국의 침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정치 전문가 데니 로이는 "북한이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위협을 의도적으로 함으로써,  적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유일하게 비빌 언덕인 중국이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북한의 고립감은 더욱 커졌다"며 "북한의 전략은 힘이 약한 국가가 강대국과 맞설 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전했다.

NYT는 이날 사설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미국 정부는 추가 제재냐, 대화냐 라는 '불편한 선택'에 직면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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