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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늦었지만 실제적 대비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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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30면

북한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핵 개발을 추진했고 평안북도 영변에 원자력단지를 구축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가면을 쓴 영변단지엔 영국이 핵개발에 활용한 칼더호형 원자로가 건설됐다. 핵무기 재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적 문제로 비화했다. 그렇지만 90년대 들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임시사찰과 남북 간의 상호사찰 협의를 반복하면서 지연 전술을 추구해 시간벌기 전략으로 일관했다. IAEA와 사찰규정 협의에 몇 년간 시간을 끌다가 불리하면 남북 상호사찰을 추진하자고 했다. 그러다가 남북 상호사찰 규정 협의에 또 몇 년간 시간을 끌기도 하였다. 필자는 당시 남북 상호사찰 협의에 여러 해 동안 참석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확실하게 인식한 것은 북한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핵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핵개발은 중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이 반복됐는데도 우리는 그동안 무슨 대책을 마련했는지 솔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정치·외교적 대책만 나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북한 핵의 제거방안으로는 군사적 방법보다는 가능하다면 평화적 수단이 최선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북한의 국가전략, 국방전략을 보면 핵무기 포기를 기대하기 곤란하다. 이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수차례에 걸친 핵실험 때마다 정부 부처에서는 긴급대책반을 편성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런데도 북한의 핵 위협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북한 탄도미사일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킬체인(Kill Chain) 조기 전력화, 원자력잠수함 개발 추진 등은 가능한 방안일 것이다. 북한이 조만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실전 배치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핵에 대한 억제와 사전 제거, 그리고 공중 요격이 실패했을 경우, 우리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핵무기가 폭발하면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사고 때와는 전혀 다른 피해가 발생한다. 우선 핵무기 폭발 시 발생하는 열, 폭풍, 방사선, 핵 전자기 펄스( NEMP : Nuclear Electro-Magnetic Pulse)에 대한 방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열과 폭풍은 어떠한 기술로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방사선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방사능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 개발과 방안 마련이 조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우선 핵 폭발 때 나오는 방사선 가운데 초기 방사선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선형 형태의 연속방사선과 차원이 전혀 다르다. 원자로의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방사선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펄스형이다. 이 펄스형 방사선은 감마선과 중성자가 있는데 2가지 모두 에너지가 높고 투과력이 커서 원거리까지 전송된다. 그 때문에 넓은 지역까지 사람과 전자장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특히 펄스형 감마선은 이동하면서 공기분자와 충돌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EMP)는 수백 ㎞까지 피해범위가 확산된다. EMP 에너지는 번개 에너지의 50배 정도여서 전자장비에 미치는 영향은 펄스 방사선 이상으로 치명적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 이 영향으로 통신체계, 유도무기 등 각종 군사장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가전제품, 핸드폰 등도 무용지물이 된다.


또한 핵무기가 폭발한 지 수 초 후에 버섯구름을 타고 원거리까지 이동되는 방사선 낙진물에는 수백 종류의 핵분열생성물이 섞여있다. 이 핵분열생성물에서는 알파·베타·감마·중성자 등의 방사선이 나온다. 반감기가 짧은 핵종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은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면 인체에 피해가 미미하다. 그러나 반감기가 긴 일부 핵종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은 수십 년, 수백 년간 방사선을 낸다.


이러한 인체와 전자장비에 치명적인 해를 주는 펄스방사선, 잔류방사선 및 EMP 등에 대비한 방호를 얼마나 준비했는가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대비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몇 명만의 인력으로 광범위한 핵무기 방호기술 개발은 어렵다. 군에서는 보유인력의 한계로 핵무기 방호에 관계되는 기술을 개발할 능력도, 진정성 있는 고민도 할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북한이 SLBM을 발사한 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북핵에 대한 실질적인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군내 원자력 관련 인력으로는 조금도 진척될 수 없는 실정이다. 군 당국은 전문인력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민간의 원자력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아 핵 방호기술을 조속히 개발해야 한다.


부처 간의 장벽이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연구비와 전문인력 운용에 정책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미국도 2차 세계대전 때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민간 인력을 대거 활용했다. 우리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군내 전문인력 한계성을 감안해 민간의 원자력 전문인력을 적극 활용해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신재곤핵공학 박사. 전 합동참모본부 핵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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