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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링 위에선 내가, 인생에선 네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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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이 9일 오후 서울 홍수환 스타 복싱 체육관에서 1977년 파나마 시티에서 맞붙었던 엑토르 카라스키야 파나마 국회의원과 17년만에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언론 인터뷰를 마친 두 사람이 글러브를 끼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은 1977년 11월 파나마 시티에서 엑토르 카라스키야 현 파나마 국회의원과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다. 카라스키야는 당시 11전 11승 11KO를 기록하며 ‘지옥에서 온 악마’ 로 불렸다. 신체적으로나 기량이나 모든 면에서 홍 회장을 압도했다. 예상대로 홍 회장은 경기 초반 네 차례 다운을 당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포기한 경기였다. 모두가 역부족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홍 회장은 넘어질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3라운드에서 왼손 레프트 훅을 날리며 마침내 카라스키야를 때려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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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회장이 "아미고"를 외치며 두 팔 벌려 카라스키야를 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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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이 얼싸안고 감격하고 있다. 카라스키야가 홍 회장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경기가 있은 뒤 39년이란 세월이 지난 2016년 9월9일. 당시 역전의 주연인 홍수환과 비운의 조연인 카라스키야가 이날 서울에서 재회했다. 지난 세월 속에 파나마 국회의원이 된 카라스키야가 서울 대치동 홍수환 스타복싱 체육관을 찾은 것이다

홍 회장은 “아미고(친구야)”를 크게 외치며 링 위의 상대였던 카라스키야를 두 팔 벌려 맞았다 . 카라스키야 역시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다가가 홍 회장과 뜨거운 포옹을 했다. 그리고 홍 회장을 번쩍 들어 올렸다.

만남은 한국국제교류재단측을 통해 카라스키야가 홍 회장을 만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이 와 이루어졌다. 카라스키야와 홍 회장의 재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만남은 지난 1999년 한 방송 프로그램(도전! 지구탐험대)을 통해서 이루어 진적이 있다.

이날 두번째 만남을 갖은 카라스키야는 취재진으로부터 10살 차이인 홍 회장의 호칭을 ‘형님’ 이라고 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형님’을 연발하면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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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카라스키야의 딱딱한 손을 만지며 놀라워 하고 있는 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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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수 전 동양챔피언도 행사장에 깜짝 초청됐다. 홍 회장은 "나는 파나마에서 황복수는 서울에서 카라스키야와 대결을 펼쳤다" 고 말했다.

홍 회장은 1978년 서울에서 카라스키야와 대결을 펼친 전 동양챔피언 황복수를 행사장에 초청해 의미를 더했다. 카라스키야도 황복수를 알아보고 감격스러운 포옹을 했다. 카라스키야는 “홍 회장과 황복수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정말 반갑다” 라고 말했다. 홍 회장이 카라스키야의 손을 만지며 “이야! 아직도 딱딱하네 (취재진들에게 손짓하며) 이거 한번 만져봐” 라며 “링위에선 내가 챔피언이었지만 인생에서는 카라스키야가 챔피언이다 정말 존경한다” 며 카라스키야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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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전 경기 당시 상황을 묘사해 달라던 취재진의 요구에 장난스럽게 눈싸움을 하고 있는 홍 회장과 카라스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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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스키야가 홍 회장에게 자신의 파나마 국회의원 뱃지를 달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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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회장의 양복 깃에 달린 카라스키야의 파나마 국회의원 뱃지.

카라스키야도 “저는 홍수환 선수를 네 번 쓰러뜨렸는데 홍 선수는 저를 한방에 때려 눕혔다. 강한 주먹을 가지고 계시다” 라고 했다. 그는 “이번 만남이 홍수환에게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 라며 홍 회장에게 자신의 파나마 국회의원 뱃지를 달아줬다. 홍 회장은 “이러다 국회의원 되는 거 아니냐?”라며 또 한번 진하게 포옹했다. 두 사람은 인터뷰를 마친 후 글러브를 착용하고 39년 전으로 돌아갔다. 이 순간 두 영웅은 모두 주연이 됐다.

사진·글=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영상=김수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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