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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세대 성장동력] 존 나이스빗 교수-박윤식 교수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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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과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24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중앙일보 주선으로 '한국의 차세대 성장산업과 세계경제 메가트렌드'라는 주제로 대담을 했다.

이날 대담에서 두 사람은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나이스빗은 "한국이 차세대 성장동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과 인적 자본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금융학계의 원로인 朴교수도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지 않는 한 어떤 성장산업을 개발하든 열매를 맺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교수(右)와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한국의 차세대 성장산업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박윤식=한국은 현재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려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도약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존 나이스빗=21세기 세계경제의 가장 큰 트렌드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고양이다. 한국은 탄탄한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다른 아시아 국가나 신흥시장 국가들과의 비교가 더이상 필요치 않다.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일이다. 희망적인 것은 한국에서 인터넷 산업이 발전한 것이 기업가 정신 덕이라는 점이다. 기업가를 중심으로 한 상향식(Bottom-up)시스템을 통해 신경제를 이끌고 경제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朴=정부는 기업가를 양성하는 데 치중해야지 지나친 개입을 해서는 안된다.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스빗=미국에서는 매년 수백만개의 기업이 생긴다. 이처럼 기업가 정신이 활발한 것은 정부의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앨라배마주 정부는 아예 주법을 바꿨다. 정부가 할 일은 이런 것이다.

▶朴=중국은 규제 성향이 강한 정부가 있는데도 빠른 경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나이스빗=지난해 장쩌민(江澤民)과 만났을 때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 江주석은 "중국엔 큰 것을 잡고 작은 것을 놔준다는 속담이 있다"고 말했다. 국영기업의 고용이나 사회 안전망 등을 지나치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효율성을 조금씩 도입하는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국영기업이 개혁의 대상일 뿐 민간기업의 창업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다.

▶朴=중국은 한국에 위협인가, 기회인가.

▶나이스빗=한국에 와보니 중국을 너무 두려워해 놀랐다. 한국에 중국은 기회다. 임금 수준이 한국의 10분의 1밖에 안되기 때문에 부품공급이나 서비스센터로 활용해야 한다. 문화적 유사성과 지리적 근접성만 봐도 한국이 중국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

▶朴=영국의 대처 총리가 시작한 민영화를 높게 평가했는데 민영화가 왜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나이스빗=유럽에서는 대처 이후에도 민영화가 계속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조흥은행 노조가 파업하는 등 많은 반대가 있지만 금융 민영화를 늦출 수 없다. 다만 통신부문의 경우는 민영화가 사적 독점으로 연결되면 안된다. 경쟁이 도입되는 민영화가 핵심이다.대처같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朴=차세대 성장엔진으로 브랜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기존의 트레이드 마크(trademark)가 트러스트마크(trustmark)로 바뀌는 중이라고 말했는데.

▶나이스빗=지금까지 브랜드는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려주는 짤막한 정보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자신의 삶에 가치를 더해 주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한다. 개인적으로 보면 뉴욕 타임스가 그런 경우다.지금은 빈에 거주 중이어서 1년에 4천6백달러나 내고 2주 후에 우편으로 받는데도 뉴욕 타임스 구독을 고집한다.

▶朴=세계 수준의 브랜드가 국가의 자산이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브랜드가 국가보다 더 큰 개념으로 등장했는가.

▶나이스빗=세계경제가 통합되면서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이 어떤 국가에서 생산됐는지엔 관심이 없다. 주변에서 노키아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노키아가 어느 나라 회사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삼성은 마케팅과 브랜딩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올바른 방향이다.

▶朴=세계화 시대에 대외개방성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 점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다.

▶나이스빗=해외인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4백여명인데 이 중 외국에서 이주한 사람이 3분의1이다. 미국의 힘은 이렇게 생긴 것이다. 21세기 경제체제에서는 자유무역과 개인의 직접투자, 그리고 정보와 이민의 흐름이 중요하다.

▶朴=역사적으로 한국인은 외국인들에게 두려움과 반감을 갖고 있다. 외세로부터 침략당하고 고립됐던 아픈 경험이 있다.

▶나이스빗=일본도 처음에는 폐쇄적인 국가였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 경제적으로는 개방적인 나라로 변했다. 다만 문화적으로는 아직 폐쇄적이다. 한국도 경제개방은 일본 못지 않다. 다만 문화적으로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내가 중국 베이징에 있을 때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중국인들은 이때 '세계화=미국화'라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세계와 연결되면서 얻는 게 훨씬 많다. 미국도 변하고 있다. 인구의 3분의 1이 라틴계와 아시아계다. 기독교 다음으로 이슬람이 최대 종교다.

▶朴=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학생.노조.젊은층의 반기업 정서가 심하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한국이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인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전투적인 노조와 불법 파업이 횡행한다. 준법정신이 결여됐고 이익단체들의 개혁에 대한 저항도 크다. 노동시장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파업 기간에는 임금을 주면 안되고 노동시장을 좀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유무역과 기업 투명성을 위해 법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나이스빗=이런 측면에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인들의 1인당 교육비 투자는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재고해야 할 때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미국에서도 초.중등 교육은 문제다. 컴퓨터를 많이 보급하면 해결될 것으로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하는 기술과 올바르게 활용하는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

▶朴=인터넷 거품이 한때 문제가 됐다. 지금도 그런가.

▶나이스빗=인터넷은 매우 훌륭한 성장 엔진이다. 지금은 초기단계다. 한국은 인터넷 산업의 잠재력이 큰 나라다. 아직도 잠재력의 5%밖에 활용하지 못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다만 정부가 끼어들어 통제하기보다 인터넷 창업을 장려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정리=김종윤.최지영, 사진=김태성 기자

<사진설명 전문>
2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에서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 폴 로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정운찬 서울대 총장(오른쪽부터) 등 국내외 학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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