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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베트남 호찌민에 2000억 베팅…신동빈 아성에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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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오른쪽)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20년까지 베트남 호찌민 지역에 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동안 롯데마트ㆍ백화점ㆍ리아ㆍ호텔 등을 운영해온 신동빈(왼쪽) 롯데그룹 회장의 아성에 대한 도전으로 풀이된다. [사진 각 사]

정용진(48)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 호찌민 상권 공략을 위해 2억 달러(약 2181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사실상 성장 한계에 봉착한 유통시장의 신성장동력으로 ‘젊은 국가’ 베트남을 꼽은 것이다. 이마트는 9일 베트남 호찌민시와 ‘호찌민시내 투자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오는 2020년까지 총 2억 달러를 투자해 대형마트와 수퍼마켓 사업을 확대한다고 8일 밝혔다.

베트남은 유통업계에서는 ‘젊은 시장’으로 통한다. 9300만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인데다, 전통시장 이용률이 75%가 넘어 대형마트로 손님을 이끌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 대형마트들도 한국처럼 깔끔한 패키징과 인테리어, 고급화 등을 콘셉트로 하지 않고 실내 전통시장 같은 분위기가 남아 있어 차별화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이마트 김성영 신사업본부장은 “금번 MOU 통해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시내에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를 확대할 계획” 이라며 “향후 호찌민시를 교두보로 본격적인 베트남 시장 확대에 나설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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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오픈한 이마트 고밥점. [사진 이마트]

이번 대규모 투자 계획은 베트남 현지 유통가에서는 공공연히 예견된 일이었다. 이마트가 고밥점에 이어 호찌민 2~3호점을 내는 등 적극적인 출점 계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고밥점 오픈을 전후해 현지를 찾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사업 계획을 밝힌바 있다.

현재 베트남에는 이마트 고밥점 1곳의 매장이 있다. 지난해 12월 오픈했다. 롯데마트는 13곳(베트남 3위)의 매장이 있다. 당초 롯데마트는 현지 대형마트 2위인 빅C를 인수해 1위로 치고 올라가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인수가액이 맞지 않아 빅C는 태국 기업의 품으로 돌아갔다. 롯데마트는 다른 인수대상 대형마트 등을 물색하고 있다.

인프라나 편의시설 측면에서 양사의 전략은 비슷하다. 이마트 고밥점에는 한국식 삼겹살집을 비롯해 키즈카페, 서점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롯데마트 고밥점 역시 대형 펍을 비롯, 키즈카페와 서점, 볼링장, 롯데시네마 등이 있다.

두 매장 모두 1500대 규모의 오토바이 주차장이 구비돼 있다. 롯데마트는 13개 매장 대부분에 롯데시네마와 롯데리아가 입점해 있다. 롯데리아는 현지 1위 패스트푸드점으로 입점 자체만으로도 현지 마트에 집객효과가 생긴다.

차이는 상품 구색에 있다. 이마트는 노브랜드 상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매장의 정중앙에는 노브랜드 제품이 가득 쌓여 있는 전용 코너가 있다. 최근 오픈한 스타필드하남의 노브랜드 전문관을 축소시켜놓은 느낌이다. 이 외에도 한국 중소기업 제품 300여개가 판매되는 등 한국산 제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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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가 올해 7월 베트남 중부 냐짱(나트랑)에 오픈한 13호점 냐짱점. [사진 롯데마트]

반면에 롯데마트는 철저히 베트남 상품이 먼저다. 매장 곳곳에 있는 1000여 가지의 초이스엘 자체브랜드(PB) 제품도 대부분 베트남에서 기획ㆍ생산한 ‘국산품’이다. 베트남 쌀국수 PB 등 현지 입맛을 최대한 살렸다. 다낭냐짱(나트랑 등 주요 휴양지 매장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현지 PB 먹거리로만 구성된 선물 리스트가 있을 정도다.

물론 한국산 상품의 절대적인 비중은 높지 않다. 두 대형마트의 한국산 제품 비율은 이마트가 약 10%, 롯데마트는 5% 선이다.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는 분위기라 두 기업 모두 현지 정부와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두 마트가 베트남 상품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마트는 8일 발표에서 “베트남 생산 의류ㆍ장난감 등 비식품 중심의 수입 품목을 과일ㆍ수산물 등 식품류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그동안 매년 베트남산 식료품 등을 ‘베트남 위크’로 행사를 해왔다.

법인장들의 면면도 두 회사의 접근법을 보여주는 좋은 포인트다. 최광호 이마트 베트남 법인장은 이마트 홍보팀장 출신으로 ‘한국 이마트’의 정신과 감성 경영을 전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회원카드에는 아예 ‘한국 1위 마트’라는 문구가 찍혀있었다. 현지 대형마트로서는 이례적으로 이마트 고밥점에 스타벅스가 입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주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약 80만원인 베트남에서 한 잔에 4000~5000원씩 하는 스타벅스는 호텔이나 고급 쇼핑몰, 백화점에만 입점을 한다. 하지만 “한국 스타벅스를 누가 키웠는 줄 아느냐”는 논리로 입점을 설득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반면 롯데마트는 축산팀장 출신의 소싱 전문가인 홍원식 법인장이 전면에 포진해 있다. 베트남 전용 초이스엘 PB 상품을 출시하게 된 것도 홍 법인장의 작품이다. 이 때문에 ‘한국산 수입품’ 눈치를 봐야 하는 노브랜드 등 이마트 PB와는 달리 고급 국산품 대접을 받는다.

홍 법인장의 경영 스타일은 ‘호찌민에서는 철저한 베트남식으로’다. 베트남인 총지배인 등을 외부에 내세우는 타 외국인투자법인들과 달리 각종 정부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물론, 아직까지는 한국의 10~20년 전 언론 문화가 남아있어 “법인장을 바꾸라”는 현지 기자들의 날선 전화에도 일일이 응대를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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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근 롯데그룹을 둘러싼 한국 검찰의 수사는 베트남 롯데마트에 리스크가 되고 있다. 한국의 영자 매체 등을 통해 신동빈(61)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와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의 소환 소식 등 검찰 수사 속보가 들릴 때마다 현지 언론의 문의가 쏟아진다.

지난 7월 중앙일보 아이24와 만난 두 법인장은 향후 사업계획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었다. 최광호 이마트 베트남법인장은 “현지에서 노브랜드가 고급 한국제품으로 인식되는 등 반응이 좋다”면서 “‘한국 1위 대형마트’ 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원식 롯데마트 베트남법인장은 “여기서는 롯데가 한국 기업이 아니라 베트남 기업인 줄 아는 사람도 많다”면서 “매출도 키우고 베트남 상품도 한국에 더 많이 수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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