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 마련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서울대 정문. [중앙포토]

“출장 간 교수님의 빈 집에 가서 개밥을 줬다”, “교수의 연구실적 채우기식 논문을 대필한 적 있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지난 2012년 학내 구성원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권실태 조사에서 대학원생이 한 응답이다. 당시 설문에 응한 대학원생 중 11.1%가 ‘교수 집 이삿짐 나르기’ 등 교수의 사적 업무 처리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교수 프로젝트 등에 의한 과도한 업무량으로 개인 공부와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답한 대학원생은 32.5%였다.

이후 서울대 인권센터는 대학원생의 노동권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권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해 올해 초 완성했다. 학교 측은 “학부생 등 다른 학내 구성원에 대한 내용도 필요하다”고 했고,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했다. 7일 전체 학생대표자회의 표결에서 통과되면 본부와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가이드라인은 ‘대학원생은 사적인 업무나 심부름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 근로·연구 시간 외에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또 ‘성별, 정체성, 출신 지역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 등 20개 권리도 규정했다. 2012년 설문조사에서 전체 교직원의 50%가 ‘교수나 동료 직원으로부터 직위·직종·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당했다’고 응답한 데 따른 조치다.

‘성희롱 및 성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도 포함했다. 지난 7월 “봉지 씌우고 먹는다”, “슴만튀(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치는 행위)” 등의 성희롱 발언이 오간 인문대 남학생들의 단체 카톡방이 공개돼 공분을 사는 등 암암리에 학내 성 문제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총학생회는 사건 발생 직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피해학생의 인권 회복과 가해학생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해고 등 불리한 행정 처분 시 자신과 관련된 문서를 제공받을 권리’도 규정됐다. 현재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서는 지난 3월 해고된 시간강사 6명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제소하는 등 다툼이 일고 있다.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가이드라인이 단지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구속력을 지닐 수 있도록 본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