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통량 갈수록 주는 88고속도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날로 누더기 길이 되어가면서 텅텅 비어가는 고속도로.
27일로 개통 2주년을 맞은 88고속도로는 당초 영호남의 화합과 지역번영을 목적으로 건설됐으나 지금은 썰렁한 고속도로가 돼가고 있다.
이길이 뚫릴 때만해도 당국은 대구·광주의 경제규모가 2조원에 이르고 연간 3백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려 3백30만명이 직접 혜택을 받고 인근지역 유동인구등 1천1백만명이 간접 혜택을 받게되며 두 지역간의 폭넓은 교류로 지역발전은 물론 생활양상까지 크게 바뀌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기대는 좀처럼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공사부실로 곳곳이 내려앉고 패어 누더기로 변해가고 교통량도 3분의1로 뚝 떨어졌으며 중앙집중식 경제구조에 따라 지역간 산업교류 역할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정책도로로서의 이미지만 남게 되는 88고속도로가 진정한 국가 사회적인 대동맥구실을 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 각계의 지적이다.
◇도로상태=경북 달성∼전남담양까지 폭13·2m, 전장1백75·3㎞의 88고속도로는 총사업비 2천39억원이 투입된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포장 고속도로.
험준한 소백산맥을 대각선으로 통과하면서 축조된 이 도로는 2차선 전체노선중 산악지노선이 65·6%인 1백15㎞나 되는 데다 길이1백m이상의 고가교가 18개소, 터널4개소, 등반차선 24㎞등으로 당초부터 도로축조공사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다.
축적된 기술도 없이 국내최초의 무근 콘크리트공법으로 시공, 철근도 넣지 않은 노면에 시멘트만 두께 30㎝로 쏟아 부어 만들었던 것.
철근 콘크리트의 경우 압력에 강한 콘크리트와 장력에 강한 철근과의 특징을 살려 내구성 과 내진성을 높일 수 있으나 무근 콘크리트는 장력이 없어 차량진동에 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산을 깎아 만든 도로는 지반이 내려앉을 우려가 많아 무근 콘크리트 공법만으론 미흡한 공사였었다.
이 때문에 84년7월 장마때는 개통 한달도 못돼 도로의 지반이 빗물에 씻겨 내려앉는 등 침하현상과 함께 45개노면에 균열이 생겨 갈라지는 등 공사부실을 지적하기에 앞서 기술상의 미스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달성∼함안까지 경남북노선만해도 지난해 한햇동안 노면침하현상이 12개소에 1천7백92평방m와 노면균열이 77개소 3백81·7m, 콘크리트연결부분의 균열현상 30개소 96·5m등으로 도로보수공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올 들어서도 지리산 휴게소진입도로 두께 30㎝·길이5백여m가 노면침하현상으로 내려 앉은 채 방치돼 있고 경남거창군가조면 산제재 주변과 합천터미널입구등 곳곳에 노면이 갈라지고 움푹 패어 있는 등 도로가 누더기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영남지사보수과장 장준원씨(44)는 『절토부분과 성토부분 편절구간에 특히 노면침하현상등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국내 기술진으로 처음 시도된 무근공법이어서 부실과 하자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2∼6일까지 5일동안엔 건설부와 도로공사시공회사 관계자들이 88고속도로 전구간을 점검, 8월15일에 끝나는 하자보수기간까지 보수비만도 4억원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술상의 미스와 공사부실로 빚어진 전구간의 울퉁불퉁한 노면굴곡현상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채 개통초기부터 내려앉은 도로를 뜯고 때우고 고치는 땜질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교통량=88고속도로 개통이후 두드러진 것은 영·호남 두지역간의 주말 대이동현상과 지역광역화.
한국도로공사측에 따르면 개통초기 대구지역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차량은 평일엔 하루9천∼1만대, 주말과 공휴일엔 2만5천여대에 이르렀고 광주지역 톨게이트를 통과한 차량댓수는 평일 7천여대, 주말 1만여대로 러시를 이루었으나 불과 6개월만인 지난해 연초부터 통행량이 점차 줄어들어 통행료를 징수하기 시작한 같은 해 4월이후엔 대구쪽이 평일 3천3백∼3천5백여대, 주말엔 7천∼8천여대, 광주쪽은 평일 2천5백여대, 주말3천여대로 약70%가 뚝 떨어졌다.
특히 전체차량 가운데 버스나 승용차등이 60%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화물트럭이어서 88고속도로가 영·호남간 경제교류를 위한 산업도로의 구실보다 일반버스노선이나 관광도로로 이용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개통 당시 폭발적으로 몰리던 차량이 최근들어 도로가 한산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은 노면이 고르지 못한데다 가파른 고갯길이 전체노선의 65%이상을 차지해 안전운행에 불편이 따르기 때문.
합천터널을 비롯, 곰재·살피재·매치재등 12개소의 고갯길은 해발4백∼5백m이상의 고지대여서 화물을 적재한 트럭이 통과할 경우 엉금엉금 기어가기 일쑤다.
트럭운전사 손우현씨 (31)는 『고개를 넘을 때마다 엔진마모율이 높고 타이어가 노면을 갉는 쐐기현상으로 아스팔트 노선에 비해 쉽게 닳는데다 콘크리트도로는 반사광이 심해 피로가 쉽게 온다』며 『통행료부담도 많아 88고속도로 운행을 기피, 국도를 이용하고 있다』 고 말했다.
대형트럭의 경우 5개 톨케이트를 지나면서 전 구간을 통행할 경우 1만2천원의 통행료를 물어야하기 때문에 아예 고속도로운행을 기피, 국도를 이용하는 화물차가 많다는 것.
이 때문에 치안본부 고속순찰대도 개통당시 88고속도로에 20㎞ 구간마다 순찰차량 1대씩 모두 10대를 배치했었으나 올 들어선 40㎞에 1대씩 배치하는 등 순찰차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교통경찰관도 60명에서 29명으로 줄였다.
88고속순찰대장 이두문경감(40)은 『올들어 88고속도로의 교통사고는 현재까지 겨우 4건이 발생했으나 모두 도로가 한산해 졸면서 운전하다 일어난 사고』라면서 『앞으로 당분간은 통행료를 징수하지 말고 생활권의 변화와 주변지역발전을 촉진키 위해 도로사용률을 높일 대책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경남함안군함안읍대산리 조태봉씨 (47) 는 『함안에서 거창까지 36㎞구간이 종전엔 40분 걸렸으나 고속도로 개통으로 20분으로 단축돼 농산물수송이 한결 쉬워졌으나 통행료 2천원때문에 고속도로운행을 꺼린다』고 말했다.
◇관광=한동안 『88고속도로 개통으로 관광업계가 살판났다』는 말이 오갈 정도로 영·호남을 상호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났었다.
대구와 광주관광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3∼5월과 9∼11월등 관광시즌엔 영남에서 호남을 찾는 관광객이 주말의 경우 하루평균 7만8천명, 호남쪽에서 영남쪽을 찾는 인파는 2만∼2만5천여명을 기록했으나 1년여사이에 4분의1 정도로 줄어 들었다는 것.
대구시내 K관광의 경우 개통이후 지난해 가을까지 30대의 관광버스중 80%이상을 88고속도로에 투입했으나 올 들어서는 평일3∼4대, 주말8∼9대만을 배차하고 있다.
특히 당일코스로 영·호남쪽에서 동시에 새로운 관광상품을 개발, 호황을 누렸던 ▲대구∼목포 유달산∼영산호∼광주 무등산∼대구 ▲대구∼광주무등산∼남원 광한누∼만인의총∼대구 ▲대구∼지리산뱀사골∼실상사∼대구등의 코스와 ▲광주∼지리산 휴게소∼합천 해인사▲광주∼지리산∼경주∼포정등의 코스도 요즘은 회원확보가 어려워 거의 중단된 상대.
이 때문에 영·호남관광업계는 종전처럼 전세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관광업계 관계자는 『개통당시 영남에서 호남을 찾는 인파가 주말엔 평균 7만여명으로 주말마다 호남쪽에 뿌리는 돈만도 어림잡아 3억5천만∼4억원에 달했다』며 『그러나 관광보고 호남나들이도 요즘엔 시들해지고 있다』고 급격히 줄어든 관광객을 아쉬워했다.
광주대의산업 지리산휴게소영업주임 이경륜씨(32)는 『개통이후 6개월간은 관광객들로 붐벼 평일엔 7백만원, 주말엔 1천만원의 매상을 올렸으나 요즘엔 주말·평일을 따질것도 없이 하루 2백만원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며 『월평균 6백만원이상의 적자로 휴게소 시설유지도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유통=영남지역의 중공업·전자공업을 중심으로한 정밀기술공업·섬유 및 직물공업과 호남의 식품가공업·자동차공업 및 그 부품공업의 산업구조적 차이를 상호보완, 두 지역간의 균형잡힌 산업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개통초기의 부풀었던 기대.
특히 내수시장의 확대에 따른 도매기능의 활성화로 대구와 광주간의 원자재 및 중간재의 수급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대구·광주상의관계자들은 한결같이『국내 경제여건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바람에 두 지역간의 경제교류가 사실상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대구상의조사부차장 정광웅씨 (45) 는 『한동안 대구직물류가 광주 간동시장에서 대종을 이루었으나 제품의 다양성과 품질면에서 서울상품에 밀려 상품의 역류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대구·광주지방의 봉제산업육성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예부터 영·호남상권의 중심지이던 대구서문시장 (5천4백73개점포)의 경우 88고속도로 개통으로 사양길의 상권이 크게 회복될 것으로 기대됐었으나 대부분의 상인들이『호남상권의신규유치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고 말했다.
주단·포목·복지등 전략상품의 전체 매출액 하루 5억여원가운데 호남지역에 대한 매출고는 8천만∼1억원정도로 88고속도로 개통이전보다 약간 늘어났을 뿐이라는 것.

<영호남=기동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