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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백혈병|영화에서처럼 불치병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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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백혈병-. 불치병의 대명사로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병이다. 백혈병은 곧 사형선고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영화나 소설은 으례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20년 전만해도 백혈병으로 진단되면 2∼3개월, 길어야 1년을 넘기기가 힘들 정도로 죽음과 공포의 시한부 생명으로 알려진 질병이었으나 지금은 치료후 10년 이상을 아무 탈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아직도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아니나 과거에 비해 장기생존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난치병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라도 불치병이라고 정의하던 시대는 지났다.
백혈병의 치료성적이 좋아진 이유에 대해 가톨릭의대 내과 김동집교수 (혈액종양학)는 ①새로운 항백혈병 약제의 개발 ②복합요법의 발달 ③출혈이나 감염등에 대한 보조요법의 발전 ④골수이식기술의 향상 등을 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인구 10만명당 3명정도인 연간 1천2백명.경제기획원의 「사망원인 통계」에 의하면 81∼84년의 백혈병 사망자는 3천63명으로 14세이하가 32%, 15∼24세가 22%, 25∼44세가 25%, 45세 이상이 21%를 차지하고 있다.
백혈병은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골수와 임파조직에서 악성화된 백혈구가 무한정 불어나 이들 조혈기관을 못쓰게 망쳐 놓음으로써 정상 백혈구는 물론 적혈구와 혈소판·임파구까지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혈액의 암」을 뜻한다.
백혈병은 임상경과가 급속한 급성백혈병과 서서히 진행하는 만성백혈병으로 대별되며 또 백혈병 세포의 종류에 따라 골수성 백혈병과 임파성 백혈병으로 구분되는데 성인에게는 골수성이 많고 소아에게는 임파성이 대부분이다.
서울대의대 소아과 홍창의교수(소아심장·소아종양학)는 소아백혈병의 94%가 급성으로 이중임파성이 60%, 골수성 27%, 기타 7%였다고 밝히고 연령별로는 3∼6세군이 40%로 가장 많았으며 3세미만군, 7∼10세군, 11∼15세군이 각각 20%정도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백혈병에 걸리면 골수의 정상기능부전에 따른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우선 정상백혈구 감소에 의한 발열을 들 수 있다. 병원체에 대한 방어작용을 하는 백혈구가 부족해 감염성 질환에 잘 걸리기 때문이다.
다음은 적혈구감소에 따른 증상으로 산소를 각 장기에 공급하는 적혈구의 수가 적어져 빈혈로 인한 안면창백·무기력·피로감을 잘 느끼고 체중이 줄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이와함께 혈액응고에 관여하는 혈소판이 감소되어 약간만 부딪쳐도 출혈이 잘 되고 피가 잘 멎지도 않는다. 코피·잇몸출혈·안구출혈·피부반점 등을 흔히 볼 수 있고 위나 신장등의 장기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
또 여러 장기에 백혈병 세포가 침범함으로써 임파절이나 비장·간이 커지고 뼈나 관절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홍교수는 결론적으로 얼굴이 창백하면서 피부에 출혈반이나 코피 같은 출혈이 잦고 팔·다리가 아프다든지 열이 나면서 임파절이 커져 있는 경우 등은 백혈병으로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만성백혈병은 언제 이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다 어느 시기에 갑자기 급성화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발열이나 빈혈·출혈 등의 증상이 그리 많지 않고, 있어도 아주 가벼운데 특징적인 것은 비장이 왼쪽 상복부를 다 차지할 정도로 커진다는 점이다.
백혈병은 혈액검사와 골수검사로서 확진을 하게 된다.
백혈병의 치료원칙에 대해 김동집교수는 『어떤 백혈병이든 치료는 백혈병 세포를 가능한 전부 없애고 임상적으로 증상이 없어진 상태, 즉 관해상태로 유도하여 이러한 상태를 가능한한 오랫동안 유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항백혈병 치료제에 의한 화학요법이 치료의 주류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치료에 가장 잘 듣는 것이 소아에 많은 급성임파성 백혈병. 95%에서 관해에 도달하며 60%에서는 5년이상 생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골수성 백혈병은 성적이 다소 떨어지나 예전에 비하면 성적이 크게 좋아졌다.
서울대의대 김병국교수 (혈액종양내과) 는 70년대초까지만 해도 관해율 10∼20%에 80∼90%는 진단 1년 이내에 사망하던 급성골수성 백혈병이 새로운 항암제의 등장과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은 관해율이 70%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말하고 최근에는 골수이식을 받게될 경우 60%이상에서 장기생존이 가능해졌으며 재발율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환자의 대부분이 성인인 만성골수성 백혈병은 여러가지 임상증상을 개선시키는 대증요법과 함께 백혈구 수를 정상수준으로 유지해 나가는데 목표를 두게 되는데 김병국교수는 「부설판」과 같은 항암제를 사용해 평균생존 기간을 3년이상 늘릴 수 있게 되었다며 이 역시 골수이식으로 장기생존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골수이식이란 백혈병 세포가 침윤되어 있는 골수를 항암제와 방사선으로 완전히 파괴시킨후 골수기증자인 건강인의 골반으로부터 뽑은 골수를 환자의 정맥을 통해 주사로 이식하는 방법으로 국제골수이식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55년이후 지난해까지 세계적으로 1백62개 연구팀에서 1만2천예가 시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3년3월 김동집교수팀이 성인백혈병 환자에게 동생의 골수를 이용한 첫 동종골수이식을 시행한 후 지금까지 백혈병 9예등 모두13예 (동종 11예, 자가 2예) 를 시행했으며 연세대소아과 김길영교수팀과 서울대의대 김병국교수팀도 골수이식에 성공한 바 있다.
골수이식후 3∼4주가 지나면 이식받은 골수세포가 생착해 새로운 정상 골수세포가 생겨나며 3∼4개월내에 이들 새 세포로부터 생긴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이 말초혈액에 정상수준으로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거부반응 등 이상면역반응이 나타나므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 이렇게 해서 2년을 넘기면 치유된 것으로 간주한다.
골수이식을 하기 위해서는 혈액형이나 성별은 관계없으나 조직형이 서로 맞아야 하므로 골수제공자를 구하기가 힘든 것이 문제다. 형제 4명중 1명정도의 확률로 맞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녀수가 적어 지는 추세에서는 골수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관해상태 (극소수의 백혈병 세포가 남아있는)에서 자신의 골수를 미리 뽑아 냉동 저장해 두고, 남아 있는 백혈병 세포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저장된 자기의 골수를 녹여 이식하는 자가골수이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체르노빌 원전사고이후 미국에서는 골수은행에 대한 논의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김동집교수는 흔히 부모들은 자녀가 백혈병에 걸리면 실망과 죄책감마저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그것은 부모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점차 치료성적이 좋아지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포기하지 말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끝까지 치료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의사와 부모의 협조가 잘 될수록 예후가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렇게 치료성적이 높아지고 있는 백혈병도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점에서 모든 환자가 최신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퍽 안타깝기만 하다.

<신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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