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일본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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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950년6월25일 일본수상관저는 흥분에 들떠 있었다. 당시 「요시다」(길전무) 수상은 한국동난 발발소식을 듣자 『천우신조다』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빈사직전에 있는 일본경제를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이웃나라의 불행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 매스컴에서 말썽이 되자 「요시다」수상은 그 말을 취소하였다.
전국토가 잿더미로 화하고 수많은 인명이 죽어가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있는 땅, 그 바로 이웃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그때 무엇을 생각했을까.
탈아입구를 표방하면서 부국강병책을 써왔던 일본은 패전후 안보는 미국에 맡겨두고 「돈벌기」에만 전력투구한 결과 오늘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 「대국」의 금도를 지니지 못한 채 오늘도 국사를 왜곡하고, 재일동포의 지문을 찍게 하는 등 이웃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한국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의 무역역조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패전직후 수십만의 실업자가 거리를 방황하고 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아야했던 일본이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6·25 한국동난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이웃 나라의 불행은 안됐지만 일본경제를 위해서는 가뭄의 단비』 라고 했던 이른바 「한국특수」의 규모와 내용은 과연 어느 정도였는가. 이에대한 최근의 일본측 자료를 살펴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전쟁은 당시 「이케다」(지전용인) 대장상이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일부 중소기업의 도산은 불가피하다』고 울상을 지은 지 불과 3개월 뒤에 일어났다.
미군의 전투개입과 함께 시작된 병참의 긴급조달을 그들은 특수(special procurement)라고 했는데, 개전직후인 제1기에는 기계류 (트럭·화차·기관차·건전지 등)가 압도적으로 많아 전체특수의 44·2%, 금속류 (철조망·철선·레일·드럼통)가 25·8%를 차지해 모두 4천96만 달러어치가 되었다.
폐문직전에 있던 공장이 풀가동되고 뿔뿔이 헤어졌던 기술자들이 몰려든 것은 물론이다.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제2기 특수는 섬유 및 직물류 (면포와 모포), 목재와 지류(연질재·조립주택용 절연동), 금속류 (철조망·콘세트병사·철교등), 기계류(화차·기관차)등으로 분산되며 총액 4천7백26만달러어치 였다.
중공군의 개입과 함께 시작된 제3기 특수는 섬유·직물(모포·방한의류등), 금속류 (철조망기둥·철선·로키트조절기·콘세트)가 주류를 이루어 전체 특수의 76%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1951년3월 후퇴일로에 있던 유엔군이 다시 반격을 시작하여 서울을 재탈환하고 38선근처에서 격전을 벌였던 휴전때까지의 제4기 특수는 직물류와 금속제품은 크게 줄어들고 대신 기계류가 늘어나 42·6%를 차지했는데 그 내용은 도요타와 닛산트럭이 2천4백56대로 7백73만달러, 화차 43만달러, 소형선박·자동차부품 등 엔진관계, 기름, 페인트 등이 3백12만달러, 석탄의 일종인 역청탄 1백69만달러, 그밖에 시멘트·생고무등 건설자재 등이 대량 발주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특수」에서 일본경제가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것은 자동차공업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949년의 일본 자동차업계는 그야말로 빈사상태였다.
이스즈는 1천2백여명, 닛산은 1천8백여명의 인원을 감원했고 도요타는 노조의 반대투쟁에도 불구하고 2천여명을 감원시켰다.
그러나 도요타의 경우는 특수로 인해 51년3월에는 월산 1천5백여대를 생산, 2차대전후 최대의 기록을 세웠다.
섬유업계도 당시 대량의 체화를 일거에 처리하게되자 국내수요가 모자라 일본정부는 「포리취제요강」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섬유업계는 특수 뿐만아니라 한국전으로 인한 세계적 군비확장붐을 타고 세계시장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철강업계도 수요가 급증, 50년초 월3만t을 수출하던 것이 그해 말에는 10만t, 연간 80만t의 기록을 보였다.
한국특수는 이같은 물자조달 뿐만이 아니었다. 철도수송·자동차·선박수리·용선·트럭수송·통신 (라디오·전신·전화)시설의 이용(연구소·검사소등)·건설등「서비스특수」가 30%나 차지한 것이 나타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일본이 달러를 벌어 들이는 3년동안 민간인 사망자만 37만2천여명, 전쟁미망인 30만명, 재산피해 4천여억원을 내었다.
5월말 현재 대일무역적자는 21억9천1백만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 한햇동안의 대일적자 30억1천7백만달러의 72·6% 수준.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는 45억∼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일본의 「엔고 엄살」은 유난히 현해탄 넘어 크게 들리고 있다. 그들의 경제를 「천우신조」로 천길 낭떠러지에서 구해준 6·25를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이란 나라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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