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국민소득 3천불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북=박병석 특파원】대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대만의 관문인 중정(고 장개석 총통의 호) 공항문을 나서자 택시의 색깔이 파랑·흰색· 녹색 등으로 다양하게 바뀐 것이 첫눈에 띄었다.
불과 3년전 만해도 대북 택시는 붉은색 일색이었다.
이러한 다양성과 변화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중충해 음침한 느낌마저 주던 건물이 대부분 밝은 페인트로 단장을 했고 간선도로변에는 제법 멋까지 낸 현대식 건물들이 과거의 빈터를 말끔히 메우고 있다.
맥도널드·켄터키치킨·웬디 등 3년전에는 단 한곳도 볼 수 없었던 서양자본의 패스트푸드 상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피에르 카르댁 등 구미의 유명상표 전문점들도 「근검절약으로 알려진 중국인」을 부르고 있다.
대부분 일본계 자본으로 세워진 새 백화점들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외제나 고급물건들이 그득하다.
1인당 국민소득 2천6백 달러(83년)와 3천1백 달러(85년)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식·의·주(중국사람들은 꼭 식을 앞세운다)라는 경제적 욕구를 충족한 그들은 과거의 「돈벌이」중심에서 탈피, 정치에의 참여욕구 등 다양한 생활을 추구하고 있다.
민주화·자유화에의 욕구, 더 높은 수준의 생활, 정의의 요구 등이 분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37년 동안 국민당정부가 계엄령 하에 「불론국사」라는 표어까지 붙여가며 국민들의 정치 불감증화를 추진했음에도 최근 당외(야당) 세력의 급속한 확장이나 집단시위가 발생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식·의·주 문제를 해결한 우리 중산층들은 정신생활의 도약을 꾀하고 있습니다. 당외의 움직임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정부는 중산층들의 이런 기대에 적극 호응해야지요.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감안할 때 민주화는 서서히 추진해야 합니다. 진보란 문제를 부단히 해결하는 과정이라 봅니다.
문제는 저 같은 공무원을 포함한 정부가 ①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과 ②이를 연구하고 ③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대서명 신문국부국장의 견해다. 자립만보의 장혜영 기자(여)도 『과거에는 정치가 경제를 끌어왔으나 이제 경제가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정치권력의 분배요구 등은 그런 현상의 하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중산층들은 정치참여와 획일적인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과격한 개혁에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역사에서는 혁명이란 것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의 반란이라고 주로 기록해왔다.
『대만인들의 국민성이란 경제적인 것이 최우선이며 정치적 참여를 소리 높여 부르짖는 사람들은 아직 소수』라고 정치대 진축삼 교수처럼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옛날 우리들이 대학을 다닐 때는 국민당원이 되고 싶어했고 또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학과 학생의 95%이상이 국민당원이었는데 지금은 30%도 안되지요』 라는 정치대 한 교수의 말은 그 동안의 변화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한 유력지의 젊은 기자는 중공과의 관계에 대해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은 이데올로기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공산당에 패한 대륙출신 국민당원들이 원한을 씻기 위한 싸움이다. 국-공 내전을 경험치 못한 40대 이후의 세대는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이 심각치 않다. 우리는 서로 왕래하고 교역도하며 편지도 주고받지 않는가』고 말하고있다.
비록 소수라고는 하지만 대만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의 한 단면이다.
반공을 체제옹호의 구실로 삼았던 국민당 정부 38년의 기반은 이런 면에서도 약화돼 자유중국이 민주화, 중국대륙과의 접촉 움직임으로 술렁대는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