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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항저우 임정 3년, 중국이 김구 보호” 음수사원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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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5일 박근혜 대통령을 맞이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표정관리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중국 항저우(杭州) 시후(西湖) 국빈관에서 박 대통령을 기다리던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이 도착하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30분 예정 넘겨 46분 회담 스케치
시 주석, 박 대통령 맞을 때 옅은 미소
카메라 향해 돌아서자 굳은 표정

그러나 카메라를 향해 돌아선 시 주석은 입을 다문 채 굳은 표정으로 렌즈를 응시했다.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환한 미소로 박 대통령을 맞이했던 것과는 달랐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시 주석이 과거 한·중 정상회담에 비해 확실히 건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국제무대에서 표정으로도 외교를 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는 지난 2014년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기념사진을 촬영하면서 아베 총리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 쪽으로 돌아선 적이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이날은 선은 지켰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논란으로 중국 내에서 체면이 손상된 시 주석으로서는 밝은 표정을 짓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러나 중립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건설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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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1996년 중국 항저우 인근 하이옌(海鹽)을 찾아 김구 주석의 피난처였던 짜이칭(載靑) 별장에 남긴 기념비. 여기엔 ‘飮水思源 韓中友誼 訪六十四年前 先父主席避難處 韓國 金信 一九九六.六.五(음수사원 한중우의 방육십사년전 선부주석피난처 한국 김신 1996.6.5)’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뜻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 한·중 우의를 새긴다. 선친인 김구 주석의 64년 전 피난처를 방문해서. 1996년 6월 5일 한국 김신’이다. 중국은 1932년 김구 선생이 일제에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김구를 보호하라”며 이곳에 머물게 해줬다. [사진 상하이저널 홈페이지]

시 주석이 이날 모두발언에서 항일 투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얘기를 꺼내며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을 거론한 말에도 가시가 있다는 평가다.

시 주석은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번 회담 장소인 항저우에서 3년간 활동했다”며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님을 위해 보호를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1996년 항저우 인근 하이옌(海鹽)을 찾아 ‘음수사원(飮水思源) 한중우의(韓中友誼)’라는 글귀를 남겼다고 소개했다. 음수사원은 중국 남북조 시대 시인 유신(庾信)이 패망한 조국 양나라를 그리며 쓴 징조곡(徵調曲)에서 따온 글귀다. 매사 근원에 감사하라는 의미로 인용된다.

이를 시 주석이 강조한 것은 한국의 항일 독립 투쟁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강조하며 한·중 관계를 한·미 관계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김흥규 소장은 “중국이 한국 역사에 기여했음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라며 “한국인이 존경하는 김구 선생을 인용하면서 한국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동시에 한국에 중국과 계속 갈등을 빚는 정책은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표본겸치(標本兼治·겉으로 드러난 문제와 근본적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뜻)’란 언급도 했다. 박 대통령이 “북핵 위협이 제거되면 사드 배치도 필요 없다”고 언급한 것에 간접적으로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봤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사드가 단순한 북핵 견제용 수단이 아니라 중국에는 동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문제임을 인식해 달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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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담은 당초 예상시간이었던 30분을 넘겨 오전 8시27분(현지시간)에서 오전 9시13분까지 46분간 진행됐다. 시 주석이 회담 시간을 더 충분히 갖기 위해 순차통역 대신 동시통역을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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