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수수료 싼 펀드도 권하는 판매사는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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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경제부 기자

“판매사가 안 팔아주니까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답이다. 그는 지난달 22일부터 1일까지 대구·부산·대전·광주를 돌아다니며 베트남 펀드 설명회의 강사로 나섰다. 드문 일이다. 게다가 은행·증권사의 ‘큰손’ 고객도 아니고 일반 투자자 앞에 서다니….

안 팔아주는 이유를 물었더니 “돈이 안 돼서”란다. 펀드는 전문가가 돈을 대신 굴려주는 대가로 ‘수고비’를 받는다. 수고비는 수수료와 보수로 구분된다. 펀드에 가입하는 순간, 그 펀드를 판매한 은행이나 증권사가 떼어 가는 돈이 (판매)수수료다. 보수는 매년 챙겨가는 수고비다. 크게 운용보수와 판매보수로 나뉜다. 펀드를 굴려주는 매니저가 속한 운용사가 가져가는 돈이 운용보수다. 펀드를 판매한 판매사가 챙기는 몫이 판매보수다.

펀드를 하나 팔면 판매사는 1% 수준의 수수료에 더해 매년 0.5% 안팎의 판매보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존 리 대표가 팔려는 베트남 펀드는 수수료 2% 이외에 판매보수가 없다. 게다가 10년 동안 환매가 어려운 폐쇄형이다. 이 펀드에 가입한 고객에게는 환매를 권유해 다른 펀드로 갈아타게 할 수 없다. 곧 10년 동안 2% 말고는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장성이 높은 시장에 자산 배분 차원에서 투자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판매사 입장에서 보자면 굳이 나서 팔 이유가 없는 펀드다.

2007년에도 그랬다. 미래에셋인사이트펀드는 출시 한 달 만에 4조5000억원 넘게 팔렸다. 수수료가 1%, 판매보수가 0.9%에 달하는 상품이다. 당시 시장 과열에 대한 경고가 간간이 흘러나왔지만, 가입하겠다고 줄 선 고객을 향해 소리칠 판매사는 없었다. 되레 ‘우리도 인사이트 펀드 팝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5조원에 육박하던 운용 규모는 현재 5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판매사는 수수료 수입으로만 400억원 넘게 챙겼지만,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 됐다.

시장 전망이나 고객의 자산배분은 언제나 후순위다. ‘돈이 되느냐’가 판매사에는 최우선이다. 10년간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펀드 시장은 쪼그라들었다.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판매사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자본주의 세상에서 당장 돈 버는 길을 마다하라는 게 어불성설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결국엔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판매사가 평가받지 않을까.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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