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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미래 건설’ 호소한 한국GM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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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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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산업부 기자

요즘 ‘없어서 못 파는’ 자동차 모델 하나를 꼽으라면 한국GM 말리부다. 대기 물량만 8000여 대, 지금 주문해도 건네받으려면 2개월 이상 걸린다. 처음엔 넘치는 주문 물량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잘 팔렸다. 하지만 최근엔 지난달 11일부터 매일같이 이어진 노조 파업의 직격탄을 맞았다. 파업 때문에 1만여 대가 생산 차질을 빚었다. 지난달엔 2777대를 판매해 6월(4618대) 대비 판매량이 40% 급감했다.

결국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이 노조에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전 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한국GM은 지난해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는 등 연이어 많은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그중 하나가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 2016년 임·단협”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헌신에는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래를 위해 회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회사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한국GM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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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국내 자동차 업계 ‘맏형’ 격인 현대차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현대차 노조는 5일 부분파업을 재개한다. 올해 14차례 벌인 파업으로 1조5900억원 규모 생산 차질이 발생했지만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2일 노사 임금 교섭에서 노조는 “사측과 잠정 합의한 임금 인상폭이 작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작다고 반발한 인상폭은 노조원 1인당 평균 ‘1800만원’ 꼴이다. 그나마 임금피크제·통상임금 문제는 건들지도 못했다. 지난달 24일 노사가 이 같은 내용에 잠정 합의했지만 노조원 찬반투표에서 78%의 반대표가 나와 부결됐다. 박유기 노조 위원장은 부결 직후 “조합원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점을 뼈아프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업체 1인당 평균 연봉은 9313만원으로 나타났다. 판매량 세계 1위인 일본 도요타(7961만원), 2위 독일 폴크스바겐(7841만원)보다 높다. 반면 생산성은 떨어진다. 1인당 연간 생산대수가 현대차는 29대인데 비해 도요타는 93대, 폴크스바겐은 57대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 위기는 아래(노조)로부터 찾아오고 있다. ‘노조 리스크’ 때문에 국내 자동차 생산 물량 비중이 2006년 65%에서 지난해 38%까지 줄었다”고 지적했다.

한국GM이나 현대차나 까딱하면 ‘없어서 못 파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안 팔리는’ 자동차 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이 보낸 편지의 ‘받는 사람’이 한국 자동차 업계로 읽혔다.

김 기 환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