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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영도 10대 원칙’이 북한판 데스노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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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11면

‘처형(處刑)’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은 섬뜩하고 자극적이다. 재판 절차를 거쳤음을 내포하는 ‘사형 집행’이란 말에 비해 거칠다. 처형 앞에 ‘공개’란 표현이 덧붙여지면 정서적 불안은 극에 달한다. 우리가 평양으로부터 들려오는 북한 고위 간부의 공개처형 소식에 놀라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이런 요소 때문이다.


북한의 교육 담당 부총리 김용진(63)이 처형당했다는 뉴스는 남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지난 6월 말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에 참석한 김 부총리가 불량한 자세를 취했다가 김정은(32) 노동당 위원장의 눈에 띈 게 화근이었다고 정보 당국은 설명한다. 이후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를 받았는데 반당(反黨)·반(反)혁명과 현대판 종파(분파의 이익만을 앞세움)로 낙인찍혀 7월 중 총살됐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졸았는지 안경을 닦았는지…”라며 사소한 태도 문제가 사태의 시작이었음을 내비쳤다. 조사 과정에서 ‘반혁명 분자’와 같은 중대범죄자로 둔갑했다는 얘기다.


대북 소식통은 “김용진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주변 인사들의 평판 등이 나쁘지 않았지만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중범죄자로 처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당국은 공개처형 여부나 집행 장소에 대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은 “괘씸죄에 걸려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의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처형됐다”고 전한다. 부인은 물론 결혼한 두 아들과 식솔들도 지방으로 추방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김용진은 김일성대 부총장과 교육상을 거친 정통 교육관료다.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잘나가던 엘리트 관료가 하루아침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것이다.

김용진 북한 내각부총리(붉은 원)의 처형 사실을 보도한 국내의 뉴스 화면. [AP=뉴시스]

지난해에만 간부 60여 명 처형최고지도자가 참석한 회의에서 졸거나 안경을 닦았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물론 서방 언론들은 김정은의 폭압적 리더십을 지적한다. 이 같은 방식의 처형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이 처형당했다.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졸았기 때문이란 게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이다. 집권 5년차인 김정은 정권에서 졸지에 비운을 맞은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간부 중 상당수가 지시사항에 말대꾸를 하거나 태도 불량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2년 3명에 불과했던 처형 간부의 숫자는 이듬해 30여 명으로 급증했고 2014년엔 40여 명, 지난해에는 60여 명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김정은식 ‘처형 정치’의 서막은 충격적이었다. 대상이 고모부 장성택이었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을 거머쥔 지 2년여 지난 2013년 12월 김정은은 장성택(당시 67세) 국방위 부위원장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숙한 후계자이자 막내아들인 김정은을 위해 후견인으로 내세운 고모부를 제거한 것이다. 부정부패와 반국가 혐의로 전격 체포된 장성택은 한 달 가까운 보위부 조사를 거쳐 사형 판결을 받았다. 당시 북한 관영매체들은 재판 소식을 전하며 맨 끝에 “형은 즉시 집행됐다”고 알렸다. 판결문 곳곳에 장성택이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는 등의 자세와 태도 문제가 등장했다. 고모부가 자신을 깔보고 있다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김정은이 감정적 처벌을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앞에서는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는다는 양봉음위(陽奉陰違)란 말이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형벌의 이유라고 보기에 말대꾸나 졸음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지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른바 ‘최고 존엄’으로 절대시하는 지도자에 대한 불경(不敬)이야말로 단죄해야 할 첫째 대상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다. 그 근거가 ‘유일영도 10대 원칙’이다. 1974년 만들어진 이 지침을 김정은은 2013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란 이름으로 가다듬었다. 여기에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권위, 당의 권위를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융화묵과하지 말라”는 대목이 들어 있다.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비상사건화하며 비타협적 투쟁을 벌이라”며 “온갖 계급적 ‘원쑤’(원수의 북한식 표현)들의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권위, 당의 권위를 백방으로 옹호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인민배우 우인희 승용차서 불륜 들켜 처형유일영도 10대 원칙은 당연히 김정은도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 주민뿐 아니라 당과 군부 간부들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는 10대 원칙에 비춰 볼 때 김정은 앞에서 존다거나 이견을 제기하는 건 비타협적으로 징벌을 가해야 할 사안인 셈이다. 일단 빌미가 될 만한 문제가 제기되면 보위부가 조사를 벌이고 다른 ‘죄상’을 모조리 찾아내 반당·반혁명 분자로 처단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다. 소책자 형태로 된 유일영도 10대 원칙이 북한판 데스노트(death note)로 불릴 만한 이유다.


김정은 집권 이전 북한에서 공개처형이 없었던 건 아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벌어진 인민재판과 공개적인 처형 방식은 전쟁의 와중에 벌어진 극단적인 이념 대결과 증오의 결과였다. 50년대 중반 이후에도 김일성 유일지배를 구축하는 단계에서 본보기식 처형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첩죄나 반혁명 혐의자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폐쇄적인 체제 특성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유명 여배우인 우인희 처형 사건은 당시 정황이 비교적 소상하게 알려진 이례적인 경우다. 개성 출신인 우인희는 60~70년대 북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은막의 스타였다. 빼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지닌 그녀는 수많은 유혹을 받았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체코 유학파인 인기 영화감독 유호선과 결혼해 3명의 아이까지 뒀지만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치지 않았다. 재일동포 청년과 불륜에 빠진 그녀는 80년 겨울, 외제 승용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다 히터를 켜 놓은 채 함께 잠들었다. 청년은 숨진 채로 발견됐고 우인희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며칠 뒤 영화촬영소 소속 전체 배우들에게 집합령이 내려졌다. 교외의 사격장에서 기다리던 이들 앞에 나타난 건 손이 묶인 우인희였다. 운명을 예감한 듯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부화방탕죄를 저지른 인민배우 우인희를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형에 처한다”는 스피커 소리에 묻혔다.


이 장면은 탈북 외교관인 고영환씨의 책 『평양 25시』에 묘사돼 있다. 당시는 김정일이 80년 10월 열린 노동당 6차 대회에서 후계자로 지명된 직후다. 김정일 지시로 납치됐다 탈북한 영화배우 최은희씨도 저서 『내레 김정일입니다』에서 북한 체류기간 중 접한 우인희의 처형 상황을 소개했다.


이후 북한에서 공개처형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다. 식량난으로 곡식창고를 털거나 마약 거래 등 범죄를 저지른 주민들이 주 대상이었다. 대량 아사 사태로 권력기반이 흔들리자 정치적 목적에서 공개처형을 하는 사례도 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대적 검열을 통해 2만 명 가까운 간부를 처단하는 심화조 사건을 만들기도 했다. 농업 담당 당 비서 서관희도 간첩죄로 몰려 처형당했다. 몇 년 뒤에는 일반 주민을 공개처형하는 영상이 외부에 공개돼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공개처형을 본 트라우마는 오래간다. 기자도 2001년 7월 중국 동북 지역 취재 당시 살인강도를 저지른 탈북 청년이 옥수수밭에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한동안 식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총성과 지켜보던 주민들의 표정 등이 떠오를 때마다 몸서리를 치게 된다.


김정은의 ‘처형 정치’도 유사한 메커니즘을 노린다. 핵심 권력 엘리트를 전격 제거하면서 그 추종세력과 가족이 참관토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항공기 격추용 고사총으로 형을 집행해 시신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하면서 “배신자들은 묻힐 자리가 없다”는 의도도 전파한다.


문제는 권력 내 파워엘리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점이다. 한·미 정보 당국은 노동당과 군부 원로그룹을 중심으로 간부들에 대한 처형에 불만을 드러내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민무력부장 같은 군 수뇌부를 하루아침에 처형하고 계급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 부하들의 충성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정영태 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충성을 유도하고 결집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지속적이고 장기화될 경우 피로감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무차별적인 처형은 물론 혁명화(재교육을 위한 노역)·철직(해임)·강등 같은 처벌이 되풀이되거나 극단적 상황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을 느낄 경우 핵심 엘리트그룹이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상황 주목 자초공개처형을 통한 공포정치는 노동당과 군부·내각의 60~70대 간부들을 장악하려는 김정은식 통치술일 수 있다. 물론 공포정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에 당장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3대 세습을 거치며 다져진 간부 감시망과 폭압적 통치 시스템에서 엘리트그룹이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혹성과 반인륜성 때문에 북한 권력 내부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싹틀 가능성이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주목하게 자초한 측면도 있다. 미 행정부는 지난 7월 김정은을 인권 유린 혐의 대상에 올렸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적 행태에 인권 유린이란 부정적 이미지까지 더해진 것이다.


최근 해외에 체류해 온 북한 외교관이나 주재원들이 속속 탈북·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발효 6개월을 맞으면서 점차 북한 특권층의 삶을 옥죄기 시작했다는 게 정부 당국의 평가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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