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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앞, 자연음향 타고 흐르는 국악 향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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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24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길 건너엔 몇 해 전까지 주유소가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몰리는 우리 대표 궁궐의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주변 경관으로 아쉬움을 사던 곳이다. 이 길모퉁이에 비로소 창덕궁의 역사와 전통에 썩 어울리는 아름다운 한옥 건물이 들어섰다. 자연음향 국악전문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이다. 국립국악원, 남산국악당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국악전문 공연장이자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 이은 두 번째 자연음향 국악공연장이다. 사실 돈화문로 일대는 원래 국악의 중심이었다. 옛날 조선성악회와 국악사양성소가 위치했던 이유로 아직도 주변에 국악 학원과 한복집, 악기사 등이 운집해 있어 ‘국악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많은 국악 명인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퇴색한 ‘국악로’의 옛 명성을 회복하고자 서울시가 나섰다. 돈화문국악당 개관은 남산과 북촌, 돈화문로를 연결하는 국악벨트 조성 계획의 첫걸음으로, 민요박물관·국악박물관 건립도 단계별로 진행 중이다. 돈화문국악당은 1일 안숙선 명창, 김덕수 사물놀이 등이 함께하는 개관식을 시작으로 10일까지 개관축제 ‘별례악(別例樂)’을 열어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이미 지난 3월 완공돼 6개월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슬슬 입소문을 타고 명소로 떠오른 이곳에서 들려오는 우리 음악은 어떤 빛깔일까.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서울돈화문국악당


사실 돈화문로 일대는 원래 국악의 중심이었다. 옛날 조선성악회와 국악사양성소가 위치했던 이유로 아직도 주변에 국악 학원과 한복집, 악기사 등이 운집해 있어 ‘국악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많은 국악 명인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퇴색한 ‘국악로’의 옛 명성을 회복하고자 서울시가 나섰다. 돈화문국악당 개관은 남산과 북촌, 돈화문로를 연결하는 국악벨트 조성 계획의 첫걸음으로, 민요박물관·국악박물관 건립도 단계별로 진행 중이다.


돈화문국악당은 1일 안숙선 명창, 김덕수 사물놀이 등이 함께하는 개관식을 시작으로 10일까지 개관축제 ‘별례악(別例樂)’을 열어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이미 지난 3월 완공돼 6개월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슬슬 입소문을 타고 명소로 떠오른 이곳에서 들려오는 우리 음악은 어떤 빛깔일까.

국악마당. 관객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연과 체험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연중 무료로 개방된다.

며칠 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불볕더위가 가시고 가을 하늘이 거짓말처럼 푸르게 펼쳐진 지난달 30일. 마주 보고 앉은 궁궐의 일부인 듯 아담하지만 격조 있는 외관의 한옥집 대문으로 들어서니 고즈넉한 정취의 네모난 마당이 펼쳐진다. 연중 무료로 개방되는 야외공연 및 체험행사 공간인 ‘국악마당’이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한옥의 멋을 느껴볼 수 있다.


마루로 들어서니 마당을 빙 둘러 전통차와 커피 등을 파는 카페테리아 공간이다. 로비 역할을 하는 사랑방 형태의 휴식 공간에는 서울시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소반, 강화도 화문석, 매듭, 3단장 등이 아기자기 전시돼 있다.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돈화문 현판이 내다보여 운치를 더한다.


언뜻 평범한 전통 한옥으로 보이지만 비밀은 지하에 있다. 사무공간인 지하 1층을 지나 지하 2층과 3층으로 내려가면 현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공연장이 나타난다. 지하 공간이지만 전통 창호와 담장무늬의 벽면, 재래종 소나무 육송으로 천장까지 마감한 내부 디자인으로 한옥 건축과 통일성을 갖췄다. 최대 폭 12m, 깊이 5m의 반원형 무대를 부채모양으로 감싸는 총 140석 객석은 단차가 상당한 급경사다. 앞사람의 머리가 전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계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졌다. 제일 뒷좌석에서도 무대 위 연주자 숨결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감이다.


3년간 국악당의 위탁운영을 맡은 세종문화회관 이승엽 사장은 개관 기자간담회에서 ‘자연음향’을 강조했다. “확성장치를 전혀 쓰지 않는 국악전문공연장입니다. 2000년 이전에 지어진 공연장은 대체로 복합적으로 장르 구분이 없는 형태가 주류였지만, 열흘 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처럼 최근의 트렌드는 전용공연장이거든요. 돈화문국악당은 국악부문에서 그런 흐름을 대표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지난 6개월간 시범운영을 하며 자연음향 테스트를 거쳐 시행착오를 줄였고요.”


쇼케이스로 시연된 아쟁컴퍼니 ‘아로새김’의 연주는 자연음향의 진가를 들려줬다. 사람의 울음소리를 닮았다는 아쟁의 미세한 떨림까지 정교하게 전달되는 명료한 사운드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가야금·거문고와는 달리 어딘지 몽환적으로 들리는 튕김음은 ‘아쟁의 새로운 발견’이라 할 만했다. 장구 반주의 날카로운 울림도 가슴에 그대로 툭툭 꽂혔다.

김정승 예술감독(사진)은 “돈화문국악당의 체적은 900㎥로 자연음향에 매우 적합하다”며 “객석의 경사로 맨 뒷자리와 앞자리의 거리를 좁혀 모든 객석에서 균등한 음향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연음향 방식은 관객과 친밀도를 높여가는 것이고, 끝까지 자연음향 원칙을 지켜내겠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서구식 공연장 건축 양식이지만 서까래와 기둥 등 한옥에 특징적인 구조를 살려 국악 음향에 최적화된 설계”라고 설명했다. 서양 음악이 울림과 잔향이 중요한 것에 비해 국악은 명료도가 우선이고, 서까래 등 한옥의 돌출 구조가 울림을 자연스럽게 잡아준다는 얘기다.


최민호 총괄PD는 전체 객석 140석 중 시야 장애석이 단 한 석도 없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대학의 대형 강의실에서 교수가 학생들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연주자와 관객 전원이 아이컨택이 된다”며 “관객이 절대 졸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장 내부. 한옥건축의 특성을 이용해 자연음향을 고수하는 국악전용으로 설계됐다.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 모든 객석에 고른 음향이 전달된다.

아쟁컴퍼니 ‘아로새김’의 쇼케이스 연주 모습

“민속악서 현대음악까지 아우르는 공연장 만들 것” 그럼 ‘가장 멋진 국악을 만나는 곳!’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공간을 채울 콘텐트는 어떤 것일까. 당초 궁궐 앞이라는 입지를 고려해 궁중음악 상설 공연장으로 운영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김 예술감독은 “궁중음악의 묘미는 정악의 웅장함과 궁중 정재의 화려함이다. 무대 크기에 맞게 축소한다면 그 정수를 보여주기 힘들다”며 “민속악부터 궁중음악, 미래 한국의 현대음악까지 아우르는 전천후 공연장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개관 축제부터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비롯해 동해안별신굿 김정희 명인, 경기민요 보유자 이춘희, 양주풍류악회,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등이 총출동해 풍류·민속음악·창작음악·연희극 등 국악이 지닌 폭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담아낸다.


가장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자체 제작하는 음악극 공연이다. 2017년 초연을 목표로 최우정 작곡가, 배삼식 작가 등으로 이미 창작진을 꾸렸다. 대금 명인인 박종기와 김계선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통해 국악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으로 엮어 들려준다는 계획이다.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위치해 관광객의 동선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모든 텍스트에 영어를 병기하고 창덕궁과 연계한 홍보 프로그램으로 외국인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한편, 문턱을 낮춰 지역 어르신들과 어린이들을 끌어안는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김 예술감독은 “국악은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라며 “굵직한 기획 공연들은 품격과 재미를 두루 갖춘 콘텐트로 준비하고 있다. 국악의 재미와 감동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양질의 공연에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고민을 모든 사업에 녹여낼 것”이라 강조했다.


10월 기획공연 ‘국악의 맛’부터 그런 고민이 엿보인다. 국악과 한식을 연계해 공감각적으로 전통의 멋과 맛을 음미하는 기획으로, 음식에 어울리는 음악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해설 음악회 형식으로 꾸며진다. 김 예술감독은 “국악과 한식은 오래 발효시켜야 비로소 제맛을 내는 등 공통점이 많다”며 “국악마당에 음악을 틀어놓고 주전부리나 전통 막걸리 등을 시식하다가 공연장으로 이동해 황병기 명인의 해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알찬 코스가 될 것”이라 자랑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서울돈화문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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