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프리미엄 없는 공정경쟁|성병욱<편집부 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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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개헌하면 큰일날것 같던 때가 몇 달 전인데 이제는 여-야 할 것 없이 조기개헌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란 말을 쓰면 집권 측으로부터『그렇다면 지금은 민주주의를 안하고 있다는 말이냐』는 항변을 듣기가 일쑤였다.
민주화가 아니라 민주발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권당의 대표가「나라의 진정한 민주화」를 시대적 목표로 내걸고 나섰으니 참으로 세상 많이 달라졌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누구의 근시를 탓하거나 무 정견을 비아냥거리자는 뜻이 아니다. 구태여 말한다면 체면에 구애돼 비현실적인데 매달리느니보다는 백 번 낫다고 보는 쪽이다.
이제 나라의 민주화와 개헌원칙에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형국이다. 어느 점에서는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호기를 맞은 셈이다. 그 동안 8차례의 개헌 중 6차례가 집권자의 주도였으며 그중 4번은 직접 자신의 집권연장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권자가 88년에 물러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집권자의 욕심이란 가장 기본적인 부담에서 해방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드문 상황을 보다 이상적이고 오래갈 수 있는 헌법을 만들어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하겠다.
현재의 집권자에 대한 배려조차 배제된 마당에 어느 개인이나 정당의 집권 편의가 새 헌법의 방향이나 제도를 왜곡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선 제도의 민주화에 앞서 발상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집권 측은 각종 제도적 프리미엄에 안주하던 구시대의 멘덜리티에서 벗어나야 하고 야당은 선명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헌법의 대통령선거제도가 특히 문제가 되어 왔지만 그 외에도 집권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과 제도는 수없이 많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제도상의 집권프리미엄을 없애 공평한 경쟁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개헌문제다. 앞으로의 권력구조에 대해 야당은 직선 대통령제를 꾸준히 주장해온 데 비해 집권 측은 의원내각제와 국회간선 대통령제를 놓고 고심하는 듯하다.
직선대통령제, 국회간선대통령제, 의원내각제가 모두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할 만한 민주제도임에 틀림없다. 다만 직선제가 집권자를 내 손으로 뽑겠다는 소박한 바람에 강하게 어필하는데 비해 간선제는 그러한 소구 력이 덜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양쪽이 각기 대통령직선제와 대통령간선제를 내세워 직선제냐, 간선제냐의 선택양상이 된다면 간선제를 주장하는 쪽이 부담을 지게될게 뻔하다.
그러나 선거방법론이 아니라 권력구조를 대통령제로 하느냐, 의원내각제로 하느냐가 되면 이는 또 다른 문제다.
집권 측이 일단 현행헌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헌을 하기로 한 이상 개헌안 내용에 여야가 합의를 이룩하지 못한다고 해서 현행헌법으로 차기집권자를 결정할 수는 이미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 야당과 타협을 이룩해 내거나, 최악의 경우라도 일부 야당의 반대강도를 순화시키고 국회의원의 3분의2이상과 국민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려면 결국 대통령직선제나 순수한 의원내각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 점 집권 측의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또 제도적 집권 프리미엄의 탈피란 차원에서 볼 때 일전에 제시된 지방자치단체의 의원선거 시안에는 문제가 많다.
지방의원의 선거구를 시·군·구 단위로 해 선거구마다 2명씩을 뽑되, 인구 30만 명이 넘는 경우 20만 명마다 1명씩을 추가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하면 인구 1천만인 서울은 시의원수가 65명이 되는데 인구 3백10만과 4백60만인 경북과 경기의 도의원수는 각각 66명으로 오히려 많아진다는 것이다.
각 시-도가 별개의 단위라서 투표가치의 등가성을 따질 계제는 아니지만 위헌 논이 제기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획 정 발상을 벗어나기는커녕 확산시키려는데 문제가 있다.
개헌 다음으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개선문제가 앞으로 가장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어떤 선거구제가 되든 가장 문제될게 바로 선거권의 불평등이다. 인구 20만 명 정도의 시골 선거구나 1백만 명이 넘는 서울의 선거구가 똑같이 2명씩의 국회의원을 내고 있다. 어느 지역 주민은 타 지역에 비해 국회에서 5배의 대표성을 지니는 셈이 된다. 모든 국민이 정치적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 10조의 평등권 조항이 무색한 현실이다.
미국·서독·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과도한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위헌이란 판결이 나와 있다. 허용 편차의 기준에 대해 서독의 입법과 판례는 33·3%이하라야 한다는 견해고, 작년 7월 일본 최고재판소의 위헌판결에서는 전국평균에서 상하 50% 이하라야 된다는 소수의견이 제시됐다. 그 정도가 넘는 심한 격차는 위헌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아무튼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여촌 야도 경향의 산물인 극심한 투표가치의 불평등도 불공정한 대통령선거제도처럼 제도적 집권특혜의 해소차원에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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