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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가 개미핥기라니…업계 통렬히 반성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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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고객의 이해관계와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것, 이게 자본시장 업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정말 고객들의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하는지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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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넉 달을 맞은 안동현(52·사진)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자본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고객의 신뢰 부족을 꼽았다. 장기간 침체기를 겪고 있는 자본시장의 이면에 잘못된 업계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최근 영화 ‘부산행’에서 펀드매니저를 ‘개미핥기’라고 표현하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국민이 자본시장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되돌아보고 통렬히 반성할 때”라고 말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외국선 비싼 PB서비스, 국내선 공짜
수수료 높은 상품 권유 악순환 불러”

안 원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서울대 등에서 2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한 경제학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에서 1년간 퀀트전략본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당시 투자상담을 받기 위해 국내 증권사를 방문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제가 업무상 기본적인 외환 정보는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국내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가 제게 차트도 보여주지 않고 외환 파생상품 가입을 권유하더군요.”

안 원장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해당 통화의 가격 그래프를 내밀며 “이렇게 높은 가격까지 올라와있는데 지금 사면 떨어지지 않겠냐”고 묻자 증권사 직원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했다. 안 원장은 “물론 그 PB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판매자는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상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와 증권사가 윈윈(win-win)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서비스 대가를 지불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안 원장은 “한국은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나라 중 하나”하며 “외국에서는 굉장히 비싼 PB 서비스를 한국은 공짜로 해주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증권사는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권유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안 원장은 “경제성장률이 2~3%에 머무르다 보니 자본시장의 역동성이 떨어지지만 이런 때일수록 경쟁을 통해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문고와 고려대, 뉴욕대를 나온 안 원장은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개혁추진위원회 등에 참여하다 올 4월 자본시장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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