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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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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며칠 동안의 대학생 시위는 몇 가지 특이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이들이 휴대한 시위도구들이 양으로 보나 질로 보아 그 어느때 없이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설마했던 구호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른바 「반미」는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구호는 그 내용이 흡사 북한의 그것과 같아 우리의 아들·딸이요, 동생이 기도한 이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다.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새 학기에 접어들어 다소 소강상태였던 학생시위는 전방부대 입소훈련거부를 빌미로 과격화하고 집단화됐다.
이번 격화된 시위는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그 하나가 반미성향의 극단화이고 또 하나가 이념노선의 극좌화다.
오늘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힘의 구조에서 반미는 곧 우리의 기본적인 안보구조인 한미동맹체제에 대한 도전이고, 극좌화는 우리사회의 기본체제인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거부다.
지금 우리가 수호해 나가고 있는 안보구조나 사회체제는 이미 우리 국민의 컨센서스와 국제적인 공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국가의 존재양식이다.
물론 과거에도 우리 학생들에 의한 반미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것이 극렬해진 나머지 반미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국가 기본을 위협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학생들은 『친미로 망한 나라 반미로 일으키자』 (서울대), 또는 『미제는 광주학살의 주범』 『팀스피리트는 제2광주사건 도발을 위한 연습이다』 (이상 고려대) 등의 게시문과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지금 미국은 우리의 최대·최강의 우방이요, 유일한 동맹국이다.
그 예를 구태여 6·25사변이나 전후복구를 위한 원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북한이 중공·소련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최근 그들과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키면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국가안보는 미국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과제다.
오늘의 국제상황이나 우리의 지리적 위치로 볼 때 한국의 독자적 국방은 아직 불가능하다. 자주국방은 방위를 위한 신념의 표시이지 사실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우리의 출초국이며 신기술의 공급원이다. 더구나 21세기를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볼 때 이 지역의 주역국가인 미국을 빼놓고는 우리의 밝은 장래는 약속 받기 어렵다.
이런 판국에 학생들 주장대로 미군을 내보내고 미국과 결별한다면 얻는 것은 공포와 전쟁위협이요, 잃는 것은 성장과 평화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금세기 초 1905년 미국이 필리핀을 대가로 한반도에서 손을 떼었을 때 일본은 즉각 이 나라를 보호국화하고 다시 5년 후에는 식민지화해 버렸다.
48년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2년 후에는 국제 공산주의 지원하에 김일성의 남침이 있었다.
이것은 숨길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학생들은 지금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신민당과 민추까지도 보수세력으로 몰아 적대시하며「근로자 중심」 의 민족 해방을 외치고 있다.
이 같은 극좌모험주의 노선은 오히려 지금 많은 국민이 갈망하고있는 자유화와 민주화를 저해하고 초점을 흐리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더구나 국군을 「미제의 용병」 시하는 태도나 미군을 몰아낸 다음에 민족을 통일하자는 논리는 민족파괴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개방적인 다원사회의 길을 걷고있다. 따라서 여러 계층과 분야의 그룹이 각자 독립하여 자기의 이익과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의 동질성이나 합의된 체제를 파괴하고 다른 그룹과의 공존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다원사회의 룰을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내적인 단결과 국제적인 협조가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비상시국에 처해있다.
국민의 분열이나 우방에 대한 배타적 행위는 배제돼야 한다.
당국은 이 기회에 과격학생들의 이념적 뿌리를 찾아 그 배후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이런 관점과 입장에서 온 국민과 지도자들의 노력이 하나로 모아져 국민적 단결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이 역경을 풀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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