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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교수 대학입학평가 다양해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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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방이 된지도 40년이 지났다. 40의 장년은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 든 것이다. 개화기의 한세대와 일제하의 한 세대가 지나고 해방후의 한 세대가 다시 지나갔다. 근대화 과정의 격동기에서 무수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우리는 성숙된 산업사회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
성숙사회를 위한 과제는 여러각도에서 고찰할수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를 볼때에 무엇보다도 경제 수준과 의식 사이에 있는 격차를 줄이는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가속화된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 미성숙된 부분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질주의가 휩쓸고 가는 비인간화의 과정에서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며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경향을 탈피하여 공동체 속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시민정신의 함양등은 모두 성숙사회에서 필요한것들이다. 자유와 평등, 자율성, 업적주의등의 가치도 여기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들이다.
의식의 성숙을 위해서는 가치체계의 다양화 역시 중요하다. 권력이나 금력을 정점으로 하여 첨예화된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는 가치체계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과 긍지를 찾을 수 있는 가치체계로 다양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인생의 목표를 외부적인 기준에서 보다도 내면적인 기준에서 찾는 「자기실현」 의 중요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12년동안 준비한 것 몇시간에 평가받아>
산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대학의 모습도 여러 가지로 달라진다. 먼저 고학력 사회의 도래와 학벌주위의 퇴조를 들 수 있다. 사회의 구조적 변동과 소득의 상승등으로 대학교육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계속 상승되어 갈 것이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의 기회도 확대되어 간다.
고등교육은 엘리트 단계를 지나 취학 연배의 30%이상이 고등교육을 받는 대중화 단계 또는 고학력 사회로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대학이 출현한 이래 오랫동안 볼 수 있었던 대학=전문직 또는 관리직 취업이라고 하는 등식은 깨지고 만다. 대학졸업생의 상당수가 노동시장에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미국에서는 대학졸업생의 30%에 가까운 숫자가 노동시장에 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학의 학벌에 의존하여 그 그늘 속에서 한평생을 살아 가려고 하는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대학의 간판 대신 실력과 업적· 능력주의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대학을 보는 눈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평생교육 체제 역시 대학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는다. 대학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학습하여 대학의 간판을 얻는 대신 인생에서 필요한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획득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언제든지 대학에 다시 돌아와서 공부할 수 있어야한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대학생 수의 3분의1이 이러한 학생들로 차 있다. 대학은 한번 놓치면 끝나는 「막차」 가 아니라 생활의 곁에 있어서 언제나 필요할 때에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대학의 가장 중요한 모습인 특성화의 문제가 제기된다. 대학의 선택이나 평가의 기준도 다양화되어 학과의 특성, 학문 영역이나 전공별 특징등이 선명하게 나타나야 다원화 시대의 욕구를 충족할수 있게 된다. 예컨대 같은 경제학과라 할지라도 수리경제학이 강한 학과와 경제사가 강한 학과로 구분되고 심리학과는 행동주의 심리학이 주류를 이루는 학과와 인지심리학이 주류를 이루는 학과 등으로 특성화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 대학과 학문이 모두 발전할 수 있고 학생도 융통성 있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이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수 있도록 대학 입학시험이 실시되고 있는가를 생각할때에 몇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학생선발을 위한 평가의 기준이 너무 획일적인 것을 먼저 지적할수 있다.
학력고사·내신·실기등으로 모든 입학생들이 평가를 받는다. 초·중·고의 12년간을 다니면서 준비한 것을 단 하루의 몇시간에 평가받고, 그 결과에 운명을 거는 것은 과열경쟁과 긴장을 더욱 재촉한다.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학생조차 전공과 외국어등 2∼3개의 시험과목을 단지 몇시간에 치르고 그 결과로 입학을 결정한다.
박사과정의 입학원서에서 연구계획서조차 볼 수 없다.
입학시기도 경직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한번 취업의 길로 들어서면 대학에 진학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평생교육의 시대에는 취업과 학업이 병행되거나 또는 취업했다가도 다시 대학에 올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는 것이다. 대학에 안가면 살기가 어렵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경직성은 과열 입시현상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이 된것이다.
대학입시에서 학력고사의 비중이 크고 학력고사는 지식위주로 출제되기 때문에 대학입시는 고등학교교육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초·중·고교에서 아무리 전인 교육을 실시하려고 해도 현행 입학시험 제도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고등학교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토론식 수업·현장견학·문화예술활동 등 전인교육에 필요한 혁신적인 교육방법이 대학입시 앞에서는 무색하게 된다.
입학후 교육을 실시할 대학이 입학과정에서 거의 재량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도 재고되어야 할 점이다. 수험생들은 이러한 약점을 알고 있으므로 면접시에 「왜 이 학과에 지원했느냐」 는 질문에 「그런 것은 물어서 무얼합니까」 는 식의 대답을 하는 것이다. 대학의 권위가 손상되고 학생에 대한 대학의 지도력이 약화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또 개성 있는 대학의 발전도 저해된다.
인간의 어떠한 제도에도 장단점이 있는것처럼 현행 대학입시제도에도 장단점이 있다. 더 바람직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현행 학력고사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전국을 단위로 하여 수험생들을 평가할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시설은 한정되어 있고 입학 희망자는 많다. 이러한 경우에는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을 선발해야 사회적으로 인재의 낭비가 없을 것이다.
전국적인 단위에서 수험생의 서열이 정해지고 자기의 점수를 알고 대학에 지원하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이 입학에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현행 제도는 학력고사 성적에 의하여 거의 기계적으로 입학을 결정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보장되고 평등감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7·30 교육개혁에서 볼수 있었던 「과의의 전면금지」에서도 「공정성」 이라는 가치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과 함께 그대로 넘기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전국적인 단위에서 평가되는것 그자체가 수험생과 대학을 매우 정확하게 점수로 서열을 매기고 만것이다. 「인간의 점수화」 「대학의 점수화」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적성등은 무시한 채 오직 점수로만 결정>
이처럼 대학·학과·사람이 점수화되기 때문에 어느 대학을 갈것인가 하는 문제도 적성을 무시한채 오직 점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인기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점수를 받은 학생은 취미를 살려 비인기학과에 가고 싶어도 부모와 담임교사의 압력, 점수가 모자란 것처럼 보이는 사회의 오해등이 싫어서 갈수가 없다. 이렇게 해서 점수에 의한 인기학과 집중은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눈사람 굴리는효과」 (snowball effect)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객관식 고사 일변도와 시험과목수가 너무 많은것도 시정되어야 할점이다. 결혼의 배우자도 「넷」중에서 골라야지 「하나」 만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는것이 4지 선다형 세대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20개에 가까운 과목들의 단편적인 정보를 몇 년 동안 외다보면 그럴만하다고도 생각되는 것이다.
교육의 근본 목표는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있다. 이 점에서 교육은 역사발전의 원동력 구실을 한다.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대학입시는 교육에 주어진 이러한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사회가 다원화 사회라는것을 감안할때에 다양한 평가 재료를 사용하여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국가를 단위로 하는 학력고사· 내신성적· 면접, 대학에서 실시하는 대학별 또는 계열별 및 학과별고사·적성검사·성취도검사· 과외활동 기록· 행동발달상항, 대학원의 경우 연구계획서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평생교육의 이념에서 보면 일정한 기간중 직장에 근무한 취업자를 특별전형으로 입학시키는 제도도 필요하게 된다. 또 필요한 과목을 한두 과목이라도 수강할수 있는 시간제 학생제도와 학점별 등록금 납입제도가 고안되어야 한다. 입학시험 실시 날짜는1년에 몇 차례로 정하고,2∼3일간 실시하여 수험생들이 마음껏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의 내신성적은 학교안의 교사가 제작한 시험성적과 학교밖의 기관에서 제작한 고사를 포함할수 있다. 학교밖의 고사인경우 1년에 2∼3회정도 각도별로 실시하되 문제은행을 설치하여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될수 있다. 내신성적의 상향조정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뿐만 아니라 교육의 연계성이나 일관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만 교육평가원같은 기구에서 고교 내신성적의 객관적 타당도를 높이기 위하여 계속 연구함으로써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할 것이다.
대학의 특성을 살리기 외해서는 입학시험 날짜의 전후기 모집과 같은 규정을 폐지하고, 각대학·각 학과등이 서로 다른날짜에 시험을 실시하는 융통성 있는 제도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동일대학의 분할모집이 가능해야 한다. 입학시험을 지원하기전에 학생은 여러차례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입학의 지원 역시 원하는 대학을 원하는만큼 지원할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충분한 기회를 통하여 수험생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자신에 적합한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입학시험의 과목에다 과목별로 가중치를 매기는 것도 대학과 학과의 특성을 살릴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특정한 학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정과목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그 영역의 학문적 발달을 촉진할수 있고 학생의 특기를 살릴수 있다. 이와 함께 입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학과별 교수의 재량권을 높여야 한다. 입학정원이 있더라도 우수한 학생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학생을 덜 뽑을수 있고 이와 반대의 경우에는 더 뽑을수도 있어야 한다.
면접과 행동발달상황, 과외활동, 연구계획서등의 내신자료는 해당대학이나 학과에서 신축성 있게 활용될수 있어야 한다. 금년에 처음 실시되어 긍정적 반응을 얻은 논술고사는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반영비율을 높이는 등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내신 문제은행설치 학교밖시험도 필요>
끝으로 입학시험 과목의 축소 조정 문제가 있다. 고등학교 교육의 성격상 20개 가까이 세분화되어 있는 입학시험 과목수는 대폭 축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입학시험 과목을 축소하는 경우에는 먼저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자체를 통합 조정하여야 한다. 예컨대 정치·경제·사회·문화·지리·역사등은 「사회」 로, 물리·화학·생물등은「과학」으로하는 것과 같다. 교육내용 자체를 학문적 체계를 따라서 구성하기보다 고등학교 교과목에 적합토록 생활문제 중심으로 구성해야한다.
이렇게 하면 국어·외국어·수학·사회·과학등 몇과목으로 조정될수 있고 고교교육과 입시가 2원화되는 데에서 오는 문제도 해소될수 있다.
지금까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입학시험의 개선방향을 몇가지 시사하였다. 여기에는 중요한 국민적 과제가 있다. 그것은 입학시험에 대하는 학부모와 학생·학교 관계자등의 태도와 가치관, 즉 국민의 교육관 문제다. 대학과 인간을 점수로 평가하고 인기학과에 집중하는 태도나 가치관을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고집하는한 어떠한 제도도 성공하기 어렵다.
국민은 대학을 신뢰하고 대학은 신뢰를 얻도록 해야하며 다원화된 사회에서 적성과 능력을 살려서 살아가는 삶을 높이 평가하는 국민적 가치관의 정립이 함께 있어야 한다.
참석자 김형립<서강대 교수> 장인숙<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진장춘<경성고 교사> 차경수<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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