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형’ 말리부…미국차 갖다 팔던 GM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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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달라졌다. 예전 GM은 미국 등 해외에서 만든 차를 그대로 한국 시장에 들여와 판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스테이츠맨’(2005~2009년)이나 ‘베리타스’(2008~2011년) 같이 직수입한 차량에서의 실패가 대표적이다. 그랬던 GM이 ‘한국화’에 매달리고 있다. 신차 출시 전 한국 시장에 맞도록 차량에 변화를 주는 작업에 공을 들인다. 말리부는 사실상 그 첫 결과물이다.

인천 청라주행시험장 가보니
온도·눈·소음 등 미국과 다른 환경
한국서 18개월 담금질 후 내놔
“일반인도 미국차와 쉽게 구분”

말리부는 지난달 4618대를 팔아 르노삼성차 SM6(4508대)를 제치고 쏘나타(5168대, 영업용 택시 판매 제외)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지난 4월 출시해 상승세란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엔 ‘역전’을 노려볼만 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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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의 강신남 차량개발본부 상무는 “과거엔 피자 도우에 모든 토핑을 미국에서 만들어 한국에서 김치만 조금 뿌리는 식이었다면 말리부는 피자 도우는 같지만 재료부터 소스까지 한국에서 만들어 얹었다고 보면 된다”고 소개했다.

그런 말리부를 한국 출시에 앞서 ‘담금질’한 곳이 인천 청라주행시험장이다. 본지는 지난달 20일 이 곳을 현장 취재했다. 한국GM 관계자는 “2007년 완공한 뒤 국내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들른 곳은 250억원을 투자해 만든 환경 풍동(風洞) 실험실. 실내에서 인공적으로 온·습도 조절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말리부는 본래 뼛속까지 ‘미국차’다. 이번 9세대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을 출시하기까지 40여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중형 세단의 표준 역할을 해 온 차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말리부는 이 곳 풍동 실험실부터 거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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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한국GM 인천청라주행시험장 풍동 실험실에서 말리부가 영하 18도 폭설 실험을 하고 있다. 한 여름이지만 실험장에선 냉기 때문에 5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한국GM의 김재일 중대형차 성능개발팀장은 “이 실험실 덕분에 짧은 시간내에 가혹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사진 한국GM]

폭염으로 찌는 듯한 날씨였지만 실험실로 들어서자 말리부를 향해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온도계는 영하 18도를 가리켰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었는데도 몸이 으스스했다. 강 상무는 “말리부는 영하 35도에서 영상 55도까지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을 거쳤다”며 “사막·빙하지대까지 가야 할 비용을 아끼고 개발 기간도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요즘 같은 폭염 조건에서 에어컨 실험을 했다. 한국 소비자는 에어컨 바람이 직접 피부에 닿는 것을 싫어해 바람보다 ‘냉기’가 부드럽게 실내에 퍼지도록 공조장치를 조정했다”고 덧붙였다. GM 본사에선 풍동 실험 데이터를 중국·중동 등 시장에서 판매하는 말리부에도 적용했다.

풍동 실험실 옆 ‘로드 시뮬레이터룸’에선 소음·진동에 유독 민감한 한국 소비자를 위해 말리부를 최적화하는 실험을 재현했다. 운전석에 앉자 바퀴 밑을 붙잡은 로봇 팔이 위 아래로 심하게 차를 들썩거렸다. 그런데도 차 안에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주행 시험장에도 올랐다. 전 세계 33곳에서 공수한 재료로 요철·30도경사·아스팔트·자갈·사막 등 현지 도로를 재현한 곳이다. GM 본사가 미국 외에 처음 만든 주행시험장일 정도로 신경을 썼다. 이 곳에서 미국에서 판매 중인 말리부와 국산 말리부를 비교 시승했다. 국산 말리부를 타자 미국차보다 운전대가 한결 가벼웠다. 코너를 빠른 속도로 돌 때마다 좀 더 단단한 승차감을 느꼈다. 김 팀장은 “미국과 달리 한국엔 과속방지턱이 많아 물렁물렁한 말리부 서스펜션을 좀 더 단단하게 튜닝했다. 국산 말리부는 미국차와 일반인도 쉽게 구분할 수 있을만큼 다르다”고 설명했다.

말리부는 총 50개월의 개발 기간 중 18개월 동안 청라주행시험장에서 담금질하는 과정을 거쳤다.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은 “말리부를 시작으로 GM 차량을 한국화해 들여오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인천=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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