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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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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의사, 한의원이라면『한씨의 병원인가』할지도 모른다.
지난 9일 임시국회는 의료법을 개 정해 한의원, 한의사, 한약의「한」자를「한」으로 바꾸었다. 이제부터는 한약방이라는 간판도 한약방으로 고쳐 달아야 한다.
한약방은 우리 눈엔 생소해 보이지만 한국 의학 사를 보면 벌써 5세기 무렵부터 동방에서 이름이 나 있었다.
신라 실성 왕 13년(서기 414년) 때 일본의 윤공왕이 병으로 신음하며 양의를 수소문하고 있었다. 신라는 김 무라는 한의사를 보내 그 병을 치료해 주고 후 상을 받았다. 이때 비로소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의」라는 글자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학은 일찍부터 고구려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신라, 백제 등 3국 중에서 한민족과·가장 인접해 있는 나라가 고구려인 탓도 있다.
서기 459년엔 역시 일본이 백제를 통해 양의를 구했다. 백제는 고구려 쪽에서 덕래 라는 명 한의를 찾아 보내 주었다. 덕래는 일본 난 피에 늘러 살며 자손 대대로 의업을 물려주어 나중엔「난파약사」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이것은 일본의 세의 문벌이 생긴 처음이다.
그 시절 학문의 수준이 높던 백제가 고구려 의사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일본 의학의 원조가 고구려 의사라는 사실도 특기할 만 하다.
일본에 당의 방을 처음으로 수입한 혜일도 덕래의 5세손이었다.
조선시대 선 조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의학을「동의」라고 불렸다. 1613년 허 준이 펴낸 『동의보감』은 그 대표적인 의 서다. 여기에 인용한 5백 여권의 의서는 대부분이 중국 책이고 우리 서적은 겨우 3권에 지나지 않지만「탕약」편을 보면 한약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여기에 소개된 1천4백2종의 약 가운데 당 약은 90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우리 향약이다. 그밖에도 속 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고유한 의술을 소개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중국으로 역수출되어 지금도 한의들이 의 서로 쓰고 있다. 「동의」의 독창성이 그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
「동의」의 명성은 19세기까지 이어져 이제 마의『동의 수세보원』이라는 의서가 출간되기도 했다. 사상의 설을 제창한 이 책은 사람의 체질에 따라 대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나누어 그 기상과 성질을 설명하고 있다. 치병도 이들 사상 인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 1만 명을 사상으로 나누어 보면 태음인이 5천명, 소양인이 3천 명, 소음인이 2천명이고 태양인은 1만 명 가운데 3∼4명, 혹은 10명이라고 했다. 바로 그「동의」가 오늘「한의」로서 신인을 받게 된 것은 격 세의 느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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