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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퍼스트펭귄] 20배 빠른 3D 프린터…10여 분이면 에펠탑 찍어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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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9일 오전 11시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3차원(3D) 프린터 제조업체 캐리마 본사. 9.7㎝ 높이의 에펠탑 모형이 11분43초만에 기자의 눈 앞에서 완성됐다. 이병극(62) 캐리마 대표는 “예전에는 4시간씩 걸렸다”며 “기존 방식이나 20배 이상 빨리 완성되는데도 표면이 유리처럼 매끄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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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마 이병극 대표는 수 차례 파산 위기를 겪은 끝에 세계 최고 수준의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캐리마의 가장 최신 제품(IM-J)은 이전보다 20배 더 빠르게 정교한 모형을 만든다. [사진 임현동 기자]

올해 초 내놓은 IM-J는 원료를 한 층씩 쌓아가는 기존 3D 프린터와는 달리 액체 형태의 원료에 설계도 윤곽대로 레이저를 쏘아서 굳힌 다음 쏙 빼내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원료를 더 빨리 쌓아서 시간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한 시간에 2㎝ 쌓던 걸 4㎝ 쌓는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놀라운 발전이지만, 소비자에겐 여전히 느리게 느껴질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개발한 걸 잊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무(無)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혁신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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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시작’은 이 대표에게 익숙한 일이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전자학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광학기술을 배워서 1983년 사진 현상기를 만드는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90년대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위기가 왔다. 사진관들이 문을 닫았고, 그의 회사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사진현상기 만들다 디카 만나 위기
광학기술 적용 3D 프린터로 재기
쌓는 방식 아닌 레이저 방식 개발
일본 미쓰이 그룹서 외자도 유치

이 대표는 기존 인화기에 부착해서 디지털 파일로 된 사진을 출력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었다. 1500만원이나 했지만 잘 팔렸다. 하지만 수출할 욕심에 중국에서 열리는 기술박람회에 참석한 게 화근이었다. 1년 뒤 500만원 밖에 안하는 중국 제품이 나왔다. 또다시 살 길을 찾아야했다. 3D 프린터 개발에 착수했다.

“저가 중국 제품에 한번 당하고 나니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기술을 개발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올 때 살아남았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모아둔 돈도 제법 많았거든요.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았으니 가끔 골프도 치면서 천천히 기술을 개발하면 되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3D 프린터는 설렁설렁해도 될만큼 만만한 제품이 아니었다. 프린터의 잉크에 해당하는 원료 개발에서 막혀 수년 간을 헤맸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골프장 회원권을 팔았다. 나중에는 공장 2개와 소유하고 있던 건물까지 다 팔았다. 그런데도 30억원이 넘는 빚이 생겼다. 이 대표는 “연구는 막히고, 회사는 어렵고… 죽으려고 한강 다리에만 몇 번 올랐는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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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에만 매달렸다. 2009년 드디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디지털 광학기술을 적용한 3D 프린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1년 산업용 3D 프린터 ‘마스터 플러스’를 출시했다. 100㎛(1㎛는 100만분의 1m)의 얇은 막을 쌓아 정교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이 대표가 직접 개발한 5가지 형태의 원료에 따라 고무처럼 말랑한 모형, 딱딱한 모형, 반투명한 모형 등 다양하게 만들 수 있었다.

3D 프린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정부가 관련 산업을 육성하면서 개발 속도도 더 빨라졌다. 성능은 비슷하지만 더 저렴하고 작은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속도’에 대한 갈증이 컸다. 이 대표는 “훌륭한 기술이지만 너무 느려서 갑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속도에 촛점을 두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개발한 것이 IM-J다.

이 대표는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과 함께 3D 프린터로 ‘인공 안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본 미쓰이 그룹과도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개발비 8억 원을 모두 일본 측이 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기업에서 협업과 투자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병극(62) 캐리마 대표=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광학 기술을 배운 후 1983년 사진 인화기 제조회사 ‘CK산업’을 설립했다. 2000년 사명을 캐리마로 바꾼 후 디지털 광학 기술을 활용한 3차원(3D) 프린터 제조에 뛰어들었다.

◆3차원(3D) 프린터=디지털화된 파일 정보를 전송받아 잉크(원료)로 입체 형태의 물건을 만드는 기계다. 크게 얇은 막을 한 층씩 쌓는 ‘적층형’과 큰 덩어리를 깎아서 형태를 만드는 ‘절삭형’으로 나눌 수 있다.

글=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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