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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조직부터 칼 댄 고이즈미 개혁, 일본 국민들은 열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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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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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성원을 밑바탕에 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협 김정수 박사 ‘개혁 3대조건’
리더 의지, 국민 지지, 사회 제도
“반대세력 아닌 국민과 소통 중요”

한국무역협회 경제·통상자문역인 김정수(사진) 박사가 구조개혁이란 난제를 끌어안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던진 조언이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한국, 성장의 추진력은 소진됐고 대외 환경은 삭막해지고 있다. 노동과 산업구조·사회제도 전반에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인기영합에 신경쓰는 정치권과 몸 사리기에 급급한 정부, 사회적 책임을 잃은 기업, 관성에 젖은 노조 탓에 구조개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 박사는 구조개혁을 위해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하기에 앞서 정치지도자가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먼저라고 설명한다. 그는 개혁의 3대 조건으로 지도자의 의지와 국민의 지지, 개혁을 위한 사회적 제도를 꼽았다. 김 박사는 최근 출간한 『개혁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란 책에서 1000여 페이지에 걸쳐 이 같은 내용을 다뤘다.

그는 2000년대 초 강력하게 개혁 정책을 추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를 참고 모델로 내세웠다. 김 박사는 “고이즈미가 총리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고한 관료 조직부터 수술대에 올리며 국민에게 개혁의 진정성을 알린 것”이라며 “개혁의 동력을 확보한 덕분에 ‘관저(官邸)주도형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우정국 대신과 후생성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고이즈미는 2001년 87대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내각을 이끌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의 개혁 기조를 발판으로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정치·관료에서 총리에게로 가져왔다.

먼저 비대한 정부 조직을 줄였다. 파벌·야합을 일삼는 자민당 주류 정치인들과의 차별화도 꾀했다. 당 주류는 비판적 발언과 개혁을 주장하는 그를 ‘괴짜·기인(變人)’으로 폄하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새로운 일본’,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메시지로 유권자를 설득했다. 일본 국민은 열광했다.

이후 고이즈미는 내각부 산하 경제재정자문회의를 구조개혁의 사령탑으로 삼았다. 자문회의는 정책 연구부터 조정과 기획 입안까지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자문회의는 부실채권 정리와 정부 예산삭감, 우정 민영화, 도로공단 등 공기업 개혁, 지방재정 개혁 등 굵직한 개혁과제를 추진했다. 특히 위원회 구성도 오사카학파를 중심으로 한 대학교수와 민간위원만으로 꾸렸다. 구조개혁론자였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를 경제재정정책담당상에 앉혔다. 관료 출신은 철저히 배제했다. 기존 체제를 지키려는 관료집단의 성격이 개혁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부처 간 조정 업무만을 맡겼다

김 박사는 “고이즈미 내각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비효율을 제거하는 등 위로부터 개혁을 추진했다”며 “개혁의 소통 대상은 반대세력이 아니라 국민이며, 정치리더는 국민과 만나 호소하고 소통하며 교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성장을 하던 경제가 저성장으로 고꾸라지면 성·세대·지위 등 온갖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는 “사회의 혼란이 커지면 구조개혁은 실기(失期)할 수도 있다”며 “반발에 굴하거나 움츠리지 말고 얽매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김 박사는 “포괄적 구조개혁을 이루기 위해선 올바른 시장 규칙(룰)과 경쟁을 통한 민간시장 활성화, 세율 인하, 상품·노동을 뛰어넘는 진입장벽의 철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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