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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억 통큰 투자…정몽구 부자 ‘활 사랑’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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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올림픽 열기가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지만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올림픽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룹이 후원하고 있는 남녀 양궁 대표팀이 사상 최고 성적을 올리면서다. 지난 13일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구본찬(23·현대제철)이 금메달을 따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의 쾌거를 이뤄 내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정 회장, 32년 전 협회 맡아 전폭 지원
장비 개발하고 소음 훈련법도 제안
정의선 부회장 대 이어 협회 이끌어

한국 양궁의 성공 뒤에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78) 회장 부자의 32년에 걸친 후원이 큰 몫을 했다는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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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의 대를 이은 양궁 사랑이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의 쾌거에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남녀 대표팀 선수들을 격려하는 정 회장. [사진 현대·기아차그룹]

정 회장과 양궁의 인연은 198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LA 올림픽 여자 개인전 금메달 소식을 지켜본 정 회장은 이듬해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하면서 현대정공에 여자 양궁단, 현대제철에 남자 양궁단을 창단했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곤 미국 출장 중 심장박동측정기·시력테스트기 등을 구입해 협회에 선물했고, 현대정공에서 레이저를 활용한 연습용 활을 제작해 선수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 선수가 사용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선수용 활 제작도 정 회장의 공로다. 90년대 말 선수용 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 호이트사가 한국 선수들에게 판매를 중단하자 국산 활 제작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집무실에 별도 공간을 만들어 외국산·국산 양궁장비 비교 품평회를 열었고, 일선 학교에 국산 장비를 지원하는 등 국산 활 저변을 넓혔다.

한국 대표팀만의 훈련방식으로 유명해진 ‘시끄러운 야구장’ 훈련도 정 회장의 아이디어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토너먼트 경기방식이 도입되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집중력을 유지하는 훈련을 제안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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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리우 올림픽 여자 단체전 결승 시상 뒤 장혜진 선수와 악수하는 정 부회장. [사진 현대·기아차그룹]

정 회장의 양궁 사랑은 대(代)을 이어 계속됐다. 2005년 양궁협회장을 이어받은 아들 정의선(46) 부회장은 꿈나무 육성과 스포츠 외교력 강화 등 중장기 양궁 발전플랜을 시행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정 부회장은 현대·기아차그룹의 연구개발 능력을 활용해 최신 장비와 훈련방법 개발을 지원했다. 휴게실·물리치료실 등이 갖춰진 트레일러 휴게실과 현지 안전을 고려해 사설 경호원과 방탄차도 제공했다. 상파울루에서 한식 조리사를 초빙하고 한식 도시락을 만들어 경기장과 선수촌에 전달했다.

지금까지 정 회장 부자가 양궁 발전에 투자한 금액만 450억원에 달한다. 통 큰 포상금도 대표팀 선수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됐다. 현대차그룹은 86년 아시안게임 1억7000만원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4억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6억5000만원, 2012년 런던 올림픽 16억원 등 지금까지 주요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코치진에게 총 60억여원을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물심양면의 지원 외에 명성이나 과거 성적이 아니라 현재의 실력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있도록 협회 운영을 투명하게 한 것을 양궁계가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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