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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종시에서 쏟아지는 3류 정책…이제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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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돼 정부 주요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지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애초부터 충분히 예상됐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에 대한 행정 서비스의 질이 악화되고 정책 수준이 저하되는 게 문제다. 국민이 일상에서 땜질식 행정에 따른 불편을 체감하고 있을 정도니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해졌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수입산 자동차의 연비 조작과 미세먼지 대책, 가정용 전기의 누진제 개선책, 해운·조선산업의 구조조정 지연, 청년고용과 수당 방안, 회사원 절반가량을 소득세 안 내는 국민으로 만든 세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보면 공무원 무용론이 나올 정도다.

 세종시 체제 이후 공무원의 역할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마치 야성을 잃어버린 호랑이처럼 현안이 닥쳐도 팔짱만 끼고 있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기 일쑤다. 국민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여론이 들끓으면 그제야 대책을 내놓지만 볼품없는 3류 졸속대책 투성이다. 그나마 대통령이 한마디 하지 않으면 꿈쩍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심장인 행정부가 이렇게 우왕좌왕해서는 나라 안팎의 중대한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세종 체제 이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산업 구조개혁 같은 내부 문제와 미국·영국에서 불기 시작한 보호무역주의 파고 등의 외부 충격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국방부·외교부·법무부 등을 제외한 정부 부처의 70%를 세종시로 분산시켜 놓은 데 따른 행정의 비효율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처음부터 세종시 수정안이 나왔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원안을 고수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국회와 청와대를 옮기는 것은 관습헌법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것도 더 논의할 필요가 없다. 헌법을 고치자는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국회나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길 수도, 세종청사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세종 체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뉴 노멀’(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우선 대통령의 관심이 필요하다. 취임 초기처럼 세종시에 종종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면 화상회의라도 좋으니 세종청사와의 소통을 더 늘려야 한다. 국회는 국장급 이상 간부를 국회로 부르는 일을 자제하고 꼭 공무원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면 지역구를 오가는 길에 직접 세종청사를 찾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공직사회의 각성과 개혁이 필요하다. 장차관·1급 관료가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적극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국민과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선제적으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공복(公僕)의 자세다. 세종청사가 갈라파고스섬이라거나 서울을 오가는 데 시간을 쏟는다고 해서 길과장·길국장·차관(車官)으로 희화화되고 조롱받아서는 국가의 미래는 없다. 청와대와 국회도 행정부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때가 됐다.